창207/구봉대산 산행기

2025-04-16     백두현

벗들과 함께 구봉대산에 올랐다. 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의 안산인 구봉대산은 굽이굽이 아홉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봉우리마다 사연이 깊어 오래전부터 오르고 싶었지만 오늘에야 기회가 닿았다. 산행이라는 게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도 있음을 알지만 첫 봉우리인 ‘양이봉’까지 등산로는 만만치 않았다. 시작부터 가파른 경사로가 쉼 없이 이어져 있어서 첫 구간이 제일 힘든 구간이었다. 안내판에 의하면 양이봉은 부모님의 뱃속 잉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우주만물이 그렇지만 산도, 사람도 그 시작은 씨앗이요, 잉태다. 그것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라면 가치도 없을 테다. 1봉까지 오르며 흘린 땀과 가파른 굴곡에서 의미 없는 씨앗이 없음을 깨우치게 하는 것 같았다. 세상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존재이유가 있겠지만 시작이 없으면 존재 자체가 없을 테니 산고의 고통이야말로 모든 가치의 시작이다.

양이봉에서 두 번째 봉우리인 제2봉 ‘아이봉’까지 거리는 아주 짧았다. 첫 구간을 힘들게 오른 터라 놀랍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아이봉은 새 생명의 태어남을 뜻한다는데 부모님의 보호아래 가장 편안한 시기이므로 산행구간도 짧다고 한다. 뱃속에서는 자궁의 보호를 받으며 양수의 안락을 누리며 탄생 이후도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눕히는 부모의 정성을 생각한다면 인생도 봉우리처럼 편안한 구간이리라. 요즘은 조기교육으로 일찍부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대개의 유년시절은 편한 시기이다.

세 번째 봉우리는 ‘장생봉’이다. 장생봉이란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치는 성장을 뜻한다.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위해 터를 다지는 시기이니 육체적으로는 성숙해지고 지식은 쌓인다. 아직 고개를 숙이는데 익숙치않지만 세상을 향한 준비는 마쳤다. 그래서 그런지 산행 길도 꾸준한 오르막 길이었다.

드디어 제4봉, 벼슬길에 오른다는 ‘관대봉’이다. 관대봉에 이르니 비로소 산 아래 세상이 펼쳐 보인다. 굳이 벼슬을 해야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음은 아닐 테니 누구든 세상에 주어진 역할대로 출사할 테다. 그 역할 하나, 하나가 다 소중한 것이니 모두는 세상을 향해 뜻을 펴는 시기가 있겠다.

다음 봉우리는 제5봉 ‘대왕봉’인데 구봉대산 중 가장 높은 봉우리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인생의 절정기를 뜻한다고 한다. 아집을 버리고 스스로의 존재가치에 꽃을 피우는 시기다. 어쩌면 지금까지 세상에 신세진 빚을 갚아가는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 함을 어쩌면 우리는 너무 거창하게 곡해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힘들지는 않았지만 유난히 긴 산행길이 이어진 후 잠시 쉬어간다는 제6봉 ‘관망봉’이 나타났다. 길었던 산행거리는 인생사 권세가 길었으면 하는 바람을 뜻한다고 한다. 인생의 절정기가 길어야 함은 당연한 이치일 테지만 세상만사에 불변이란 존재 않는 것, 이제까지 왔던 길, 잠시 뒤돌아보는 구간이기도 하다. 도시락도 먹고 무거운 배낭의 짐도 줄여가면서 정신없이 걸었던 인생, 열심히 살았더라도 돌이켜보는 과정은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저기 넓은 공터도 있고 휴식을 취하는 등산객도 많았다.

다음 제7봉은 ‘쇠봉’이라는데 늙고 병듬을 뜻한다. 인생사 생, 로, 병, 사 돌고 도는 것. 누구인들 피해갈 수 있을 것인가. 사람마다 순서만 다를 뿐 빠짐없이 거치는 인생이다.

쇠봉을 지나 제8봉 ‘북망봉’에 오르니 이제 산행도 끝나가고 삶도 마감해야 할 때다. "공수래, 공수거"라더니 빈 수레로 왔으니 빈 수레로 돌아가라고 써 있다. 이제까지 힘든 구간도 있었고 쉬운 구간도 있었다. 긴 구간도 있었고 짧은 구간도 있었다. 또한 요란한 수레도 있었고 초라한 수레도 있었다. 그렇지만 마지막은 이렇게 다 같이 빈 수레니 모두는 공평하다.

마지막으로 제9봉 ‘윤회봉’에 오르니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있다는 것은 없다는 말이요, 없다는 말은 다시 있다는 말이니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남이다. 인간이 6도로 윤회하는 한 선택권이란 없다. 그저 과거의 업으로 인해 끊임없이 윤회할 뿐이다. 그 많은 재산과 그높은 권세가 다 뭐란 말인가. 다음 생은 빈손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 아무리 목에 힘주어 산다 한들 천년, 만년 같은 것은 아닌 것. 정말로 잘 사는 길은 비우면서 사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렵다. 40리 폭의 강에 혼자 강둑을 쌓는 것처럼 정말로 어렵다. 뉘라서 쉬웁다면 그리하지 않을 것인가. 왔다가 간다는 것은 어쩌면 유전자를 남기고 가는 것. 또 다른 나로 다시 태어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제 산을 내려가면 어느 날엔가 또 여기에 오를날이 돌아오듯 삶도 돌고 도는 것, 윤회 하는 것을 새긴다. 끝이란 새로운 생명을 위한 또 다른 시작이다.

하산 길에 허기진 배를 달래려 선술집에 들렀다. 빈대떡과 동동주를 시켜 놓고 처마 끝에 매어진 옥수수 꾸러미를 바라보았다. 동동주 한 잔에 노랫말 한 줄이 지어졌다. 빈대떡 한 점에 노랫말 한 줄이 더 지어졌다. 씨앗이 되어 봄을 기다리던 옥수수가, 2절 가사가 완성되는 동안 조용히 내려다 보고 있었다.

굽이 굽이 구봉대산 아홉 봉우리

양이봉은 태어나고 아이봉서 자랐다네

관대봉은 나아가고 대왕봉서 절정이네

나도 굽이 굽이 구봉대산 저 산처럼

사바세계 인연 따라 낳아져서 자라난 것

팔만사천 근심걱정 번뇌에서 벗어나

정진하면 정진하면 불국정토 이루리라.

돌아 돌아 구봉대산 아홉 봉우리

관방봉은 돌아보고 쇠봉에서 늙었다네

북망봉은 돌아가고 윤회봉서 다시 나네

나도 돌아 돌아 구봉대산 저 산처럼

사바세계 인연 따라 늙어지고 죽는 것

희노애락 생노병사 번뇌에서 벗어나

성불하면 성불하면 불국정토 이루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