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10/긴 장마의 끝

2025-05-07     백두현

자주 찾던 칼국수집이 직장 근처에 있었다.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운영하셨는데 오랜 기간 칼국수 한 그릇에 3,000원이었다. 구수한 고향 맛으로 대부분의 사람들 입맛을 저격해 인근지역에 나름 소문난 맛 집이기도 했다. 그 집의 칼국수 면발은 항상 손으로 밀었으며 밑반찬이라야 콩나물무침과 배추김치가 전부였지만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테이블이 적은 탓에 더 붐비는 것이기는 했다. 식탁 2개가 전부인 식당 홀과 침실 및 영업장을 겸하는 안방에 겨우 테이블 3개가 더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어떨 때는 줄을 서야 할 정도로 문전성시가 분명했다. 무엇보다도 가격이 저렴했고 같이 운영하는 셈인 50대 중반인 후덕한 아주머니의 친절과 전형적인 할머니 손맛이 잘 어우러진 원조 칼국수 맛 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였다. 해가 중천에 떠도 칼국수 집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혹시 할머니가 어디 병이 나셨는지 궁금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지날 적마다 확인했지만 한 번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점점 더 시간이 지나면서 아예 식당 간판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불길한 마음이 들었지만 뭘 어쩔 도리는 없었다. 날이 갈수록 가슴 한 쪽이 허전한 느낌이었는데 처음에는 그저 칼국수가 그리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궁금증들이 마냥 칼국수에 대한 향수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어린 시절의 향수, 내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고향에 대한 추억 같은 것들이 함께 버무려져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였다.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고 덮지 못하는 책갈피처럼 뭔가 자꾸 뒤돌아보게 한 것이다.

그런데 알았다. 칼국수 집이 문을 닫은 이유를. 할머니가 아픈 게 맞았다. 그러나 질병이 아녔다. 그렇다고 노환도 아녔다. 마음의 병이었다. 종업원처럼, 동생처럼, 어쩌면 가족처럼 15년을 같이 일한 아주머니의 퇴직금 청구가 문제였다. 퇴직금 같은 것은 오랫동안 서로 줄 생각도 없었고 받을 생각도 없었다. 근로계약서가 뭔지도 몰랐고 처음에는 바쁠 때마다 일당을 받고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시작한 근로였다. 점점 손님이 많아지자 자연스럽게 종업원처럼 매일 출퇴근하게 된 거였고 할머니는 별도의 퇴직금은 없다는 전제아래 최대한 성의껏 월급을 챙겨주었다. 아주머니 역시 현실적인 반대급부에 만족했으므로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더불어 아주머니는 할머니를 사장님이 아니라 늘 언니라고 불렀다.

그러나 청구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15년간의 퇴직금을 청구했다. 문득 본인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 자식들이 뒤에서 부추긴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려나 퇴직금은 청구되었고 금액이 거의 5천만 원에 이르렀다. 할머니로서는 기절할 노릇이었고 돈을 벌려면 몇 만 그릇을 더 팔아야 하는지 계산이 되지 않았다. 그 돈을 보충할 때까지 자신이 살아있기는 할 것인지 도저히 자신감도 없었다. 닥치고 문을 닫아야 했다.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이 무서워 영업을 계속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셈이 틀렸다. 머리 검은 짐승이 어떻다더니... 정말로 가슴에 손을 얹고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아도 15년간 늘 보던 사람이 그렇게 돌변하도록 서운하게 만든 이유가 할머니에게는 없었다.

법에 의해 근로자에게는 매년 1개월분의 퇴직금이 보장되어 있다. 매월의 월급에 퇴직금이 포함된다는 약정이 있더라도 이미 그 자체로 불법이라는 판례도 있다. 그러므로 할머니는 퇴직금을 주어야 맞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오랫동안 잘못했다. 지급할 퇴직금을 감안해 그간 칼국수 값을 더 받았어야 했다. 아니면 아주머니에게 지급하는 월급을 가게 형편에 맞게 조금 줄여야 했다. 덜 준만큼 차곡차곡 퇴직금으로 모아야 했다. 아주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근로계약서가 없더라도 퇴직금을 받을 것이란 의사표시를 이미 했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그 오랜 기간 퇴직금 없는 근로라는 것을 묵시적으로 서로 인정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서로 합의했다. 지난한 논쟁 끝에 서로의 마음속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채 절반의 금액을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그렇더라도 가게는 폐업이 확정되었다. 할머니에게 대인기피증 비슷한 현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주머니 역시 시골마을에서 너무했다는 소문이 나 더 이상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무래도 아주머니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을 것 같다. 혹시라도 가족 중에 누군가 중병이 걸렸거나 사기를 당해 어디서든 돈 나올 구멍이 필요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도둑질을 해 돈을 마련하기는 어려웠고 왠지 그렇게라도 눈 딱 감고 돈 나올 구멍을 찾았다고 믿고 싶었다. 곁에서 지켜보지 않았으니 진실은 모르는 것이나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거기서 거기라 믿는다. 긴 장마 끝에 결국 여름은 가고 어느새 나무는 다시 낙엽 떨어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