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15/나의 윤회론(輪廻論)
뭇 소들이 목장에서 풀을 뜯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평온한 일상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스스로는 살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다. 살아 움직인다는 자체가 무언가 다른 생명을 취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세상은 먹지 못하면 반드시 먹히는 구조다. 그렇게 치열하게 먹은 풀들이 기도를 거쳐 소에게만 유독 여러 개 존재하는 4개의 위에서 차분차분 소화가 될 것이다. 먹고 먹힌다는 것은, 그래서 소화가 된다는 것은 형체의 변환이다. 모이고 모여 풀이 되었던 원자들이 다시 흩어져 소에게로 가 기꺼이 소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다시 어느 날인가 사람들이 식성에 따라 그 소를 잡아 요리하게 되면, 요리된 맛난 고기를 저마다 꿀컥 삼키게 되면, 그러면 또 소가 사람에게 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사람의 일부가 되리라. 풀이 곧 소의 일부가 되었다 다시 사람의 일부로 되는, 계속해서 돌고 도는 육(肉)의 순환, 결국 환생이다.
더 많은 날이 지나 또 다시 어느 날에는 그 사람 역시 생을 마감할 것이고 화장한 재를 어딘가에 뿌리면 헤엄치던 물고기도 먹고 땅속의 나무뿌리 또한 먹게 되리라. 그러면 또 죽었던 사람은 물고기가 되고 나무도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순환하며 원자와 원자가 모였다 흩어지길 반복하는 우주다. 원자라는 것은 본디 우연히 모여 무엇인가를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자로 뿔뿔이 나누어지며 이합집산을 영원히 거듭한다. 더러는 같이 모여 포도주가 되고 아주 가끔은 고양이도 된다. 때로 바위로 또는 쇳덩이로, 흙으로, 물로, 끊임없이 돌고 돌며 계속해서 다른 형상으로 윤회하는 삶이다. 그러므로 육(肉)의 다음 세상이란 천당이나 지옥 같은 내세(來世)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사는 세상이다. 풀의 다음세상은 소의 세상이고 소의 다음세상은 인간 세상이다. 물고기다. 나무다. 계속해서 같은 세상 안에서 네가 되었다 나도 되는 서로 주고받는 한 세상이다. 절대 끝나지 않는 한 세상 안에서 무량대수(無量大數)로 소멸과 탄생을 거듭할 따름이다.
그런 세상을 조금 더 안으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낮과 밤이 사이좋게 공존한다. 서로는 서로를 기다리는 존재로 세상을 공평하게 주고받으며 시간을 나눈다. 그러나 낮에는 밤이 보이지 않고 밤에는 낮이 보이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서 나란히 존재하나 낮이 오면 밤은 사라지고 다시 밤이 오면 낮이 사라진다. 서로가 대물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중단 없이 윤회하며 평행선처럼 나란히 살고 있다. 보이지 않아 다른 세상처럼 여기기는 하나 그렇더라도 둘은 서로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중단 없는 반복인데 서로에게 서로가 보이지 않을 뿐 구름처럼 변화무쌍하지 않고 언제라도 예측 가능하다. 미래 운명이 번갈아 확실해 만나지 않아도 서로를 안다.
그래서 생각한다. 지극히 합리적인 의심을 한다. 혼(魂)의 세계 역시 어쩌면 육(肉)의 세계처럼 끊임없이 윤회하는 것 아닐까. 이승과 저승도 낮과 밤의 순리처럼 이 세상 안에 똑같이 공존하는 건 아닐까. 이승에서는 저승이 보이지 않고 저승에서는 이승이 보이지 않을 뿐 같은 공간 안에서 나란히 주고받으며 이어지는 것 정말 아닐까. 모든 살아있는 생명은 죽어 육(肉)은 육(肉)대로 윤회하고 혼(魂)도 없어지는 게 아니라 두 세상을 공존하며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며 이어지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이승의 生은 저승의 死고 저승의 生이 이승의 死일 텐데. 생이 곧 사고, 사가 곧 생일 테다. 이승에서는 저승으로 가고 저승에서는 이승으로 오며 끝없이 오고 갈 때마다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생각이 다시 Reset될 뿐 영원히 죽지 않는 낮과 밤의 연속일 수도 있겠다.
가끔 생각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세상에서 없어질 텐데 그 다음은 뭘까. 그 순간 자다가도 소름이 끼친다. 모든 것은 계속 돌아가는데 그 안에서 나만 완벽하게 끝이라는 것 아닌가. 그토록 큰 태양계 내에서 단 하나뿐인 별이 우리 은하에 수천 억 개가 있다는데, 그런 은하가 우주에는 다시 또 수천 억 개 있다는데, 그 많은 별들조차 시간이 가면 소멸과 생성을 반복한다는데, 어쩌면 그런 우주조차 하나가 아니고 무한한 다중우주일 수도 있다는데. 그런데 나는 끝이라고? 너무 허망하다. 아니 무섭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육(肉)의 순환이야 물고기로, 풀로, 또는 소로 변형되는 것이지만 혼(魂)의 순환은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어떤 경우라도 끝은 아니었음 한다. 그리하여 믿고 싶다. 삶이 곧 죽음이고 죽음은 다시 삶이려니, 끝과 시작의 반복이 아니라 그냥 단순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려니, 낮과 밤의 역사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게 같은 공간에서 존재하는 것이려니. 참으로 영원히 공존하는 양자의 세계라서 절대 가치는 뉘라도 불변하는 것이려니.
시간은 일정하게 흐르는 게 아니라고 한다. 특정 공간에서는 시간도 곡선으로 휜다는 거다. 블랙홀의 지평선 같은 곳에서는 시간이 상식 이하로 느려지거나 멈춘다고도 한다. 믿을 수 없지만 증명된 사실이다. 삶도 그랬으면 한다. 믿을 수 없지만 인간이라 믿고 싶은 것들이 실제 존재했으면 한다. 모든 인연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인연에서 다시 인연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오른 발을 띄면 이승이고 왼발을 띄면 저승일 것처럼 끊임없이 오가며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 하여 이승에서 그리운 사람들 저승에서 다시 만났으면 한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이여! 죽음, 그다음은 제발 다시 삶이기를. 세상 모든 사별 역시 다시 만날 약속이기를. 이승이든 저승이든 한 번 이루어진 사랑, 다음세상에서 다시 반복하는 것이기를. 고로 어떤 세상 어느 사랑이든 무섭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는 각자 그런 당연한 삶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