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18/전라도 사위라서
강산이 서, 너 번 바뀌기 전 일이다. 여동생이 결혼하고 싶다며 신랑감을 데려왔는데 어머니가 결사반대하셨다. 직업도 문제고 가정형편도 문제였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전라도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생기는 것 없이 그쪽 사람들을 많이 미워하셨던 어머니에게 지역적인 출신성분에 대한 편견은 대단했다. 단순하게 어느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미워한 것인데 종교적인 신념 비슷한 것이어서 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여동생은 오래 걸리지 않아 결혼에 성공했다. 반대에 반대를 거듭하던 어머니가 미처 둘 사이를 완전히 끝장내지 못하고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뜨셨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가 오래 사시기만 한다면 그깟 여동생의 결혼쯤은 완전 파장이 나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그쯤에서 죽음으로 결혼을 승낙하는 비극적인 시나리오가 당신의 운명이라서 그저 슬플 따름이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사망신고를 하고 제적등본을 살펴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그토록 전라도 사람을 미워하셨던 어머니의 원적이 전라북도 <남원>이었기 때문이다. 외증조부께서 그곳에 사시다 외조부가 충청도로 이사해 일가를 이루신 모양이다. 평소 제적등본을 발급받은 적이 없고 그저 호적등본에 나와 있는 본적만 알고 있던 어머니는 스스로의 뿌리가 전라도라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 미워하기만 하다 생을 마감하신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더 많이 흐르고 흐른 어느 날, 그렇게 운명적으로 가족의 인연을 맺은 매제가 부친상을 당해 전라북도 무주까지 문상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국도임에도 불구하고 흙길이라서 몹시 힘들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포장되지 않은 국도가 별로 없었는데 별천지 같은 생각이 들었다. 뭐 이런 것 때문에 지역감정이 생기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었다. 내심 위정자들의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불편부당하게 이용되는 것이 지역감정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험난한 전라도 비포장 흙길을 운전하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경상도 지역은 지형적으로 물길이 낙동강으로 모아지며 바다로 나가는 형태라고 한다. 그런 환경적인 영향에 기인한 힘이 사람에게도 미쳐 여러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뭉쳐지는 습성을 가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지역은 경제개발이나 산업성장에 큰 동력을 가진다는 논리인데 말하자면 독일의 강들과 흡사한 환경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경상도 지역이 지형적으로 부흥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반면 전라도는 물결이 경상도의 낙동강처럼 한줄기로 뭉쳐져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금강, 영산강, 만경강, 동진강 등으로 수세가 갈라져서 바다로 들어간다. 하류에 이를수록 흩어지는 모양인 것이다. 때문에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지기 마련이라 예술과 문화가 발달한 프랑스와 같은 환경이라고 한다. 그래서 산업화와는 거리가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저 웃자는 유머가 아니라면 사이비종교의 교리 같은 유치한 궤변이다.
나로서는 신라 중심의 그릇된 역사관이 가져온 부작용이라는 생각이다. 외세를 등에 업은 신라가 백제를 합병함으로서 한쪽은 우월감을, 다른 한 쪽은 패배감을 가지고 살아온 내력일 수 있다. 아니면 오랫동안 경상도 출신의 권력자가 통치한 후유증이 혹시 아닐까. 신라의 후예가, 아니면 이조시대 남인정권 의 후예가 다년간 통치하다 보니 한국판 산업혁명의 근거지로 경상도 지역만 발전시킨 것 아닐까. 그러다 시시비비를 가리려다 보니 궁색하게 남의나라 땅의 형태까지 들먹이며 지형적인 분석을 하게 되는 것이리라.
아무려나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똑똑하지 못한 사람 또한 너무 많아 문제인 세상이다. 이용하려는 사람도 많고 이용당하는 사람 역시 많고 많은 세상이다. 이 작은 나라가 둘로 나뉜 것도 모자라 다시 반을 또 가르게 된 직접적인 이유다. 보수와 진보 논리가 둘로 갈라져 누가 이겨도 나머지 절반은 수용하지 않는 논리가 참 싫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지역적으로 둘로 나뉘어 귀는 열지 않고 입만 여는 행태가 정말로 싫다. 마치 나쁜 사람과 더 나쁜 사람이 힘으로 줄 세우기를 강요하는 것 같아 나로서는 불쾌하기만 하다.
그래서 말인데요. 어머니! 그 짧은 삶 중에서도 어찌 그리 많은 시간을 이 끝없이 지루한 소모전에 쓰시다 가셨는지요? 이아들은 그 불편한 진실 때문에 늘 가슴이 아픕니다. 어머니는 모르셨지만 제가 겪어보니 전라도 사위라서 참 좋기만 합니다. 그때 동생이 경상도 사위를 데려왔더라도 나빴을 이유는 결코 없었을 겁니다. 지금 전라도에는 의성김씨가 여전히 많이 살구요. 경상도에도 전주이씨가 엄청 많이 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