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25/8층 여자
휴일 오전 안방에서 늦잠을 자고 있는데 느닷없이 “빡!”소리가 났다. 그리고 거실에서 TV를 보던 아내와 딸이 비명을 지르며 내게 달려왔다. 갑자기 강도라도 들었다는 것인지 보호본능에 무작정 거실로 뛰쳐나갔지만 사실은 나 역시 무섭고 심장이 떨렸다.
그런데 꿈을 꾸는 것인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베란다 통 유리창에 엄청나게 큰 거미 한 마리가 착 달라붙어 있었다. 형체 분간이 어렵도록 시커멓고 커다란 것이 거의 사람크기였다. 나도 모르게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느라 가장의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살펴본 괴물의 정체는 바로 사람이었다. 검은 옷을 입고 산발머리라서 놀란 눈에는 상상속의 대형 거미처럼 보였을 뿐, 웬 중년 여자가 손과 발을 거미처럼 우리 집 베란다 유리창을 꽉 부여잡고 있었다. 아뿔사! 누군가 투신자살을 시도했는데 운 좋게도 우리 집 베란다 보호대와 벽 사이에 다리가 끼어버린 것이다.
서둘러 유리창을 열고 여자를 구했는데 덩치만 크고 종잇장처럼 가벼웠다. 자세히 보니 위층에 살던 8층 여자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아무 말 없이 인사를 하고 올라갔다. 놀랍고 흥분되어 청심환을 찾을 지경이었지만 말 못할 사정이 있지 않을까 추측할 따름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아파트 주차장으로 119 구급대가 요란하게 왔다. 누군가 뛰어내려 병원으로 호송중인데 분명 또 그 여자 같다. 이웃으로부터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이번 자살 역시 수십 년 된 향나무 정원수 덕에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8층 여자는 다른 아파트의 저층으로 이사를 갔다. 남편을 통해 우울증으로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만 남긴 채 쓸쓸하게 갔다.
살다보면 나처럼 직접, 아니면 뉴스를 통해 이런 저런 자살 소식을 접한다. 그 이유가 그날 나를 놀라게 만든 8층 여자처럼 병으로 인한 것이든, 나라 전체를 우울하게 만든 한 정치인의 마지막 선택이든, 스스로는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리라. 아무도 스스로는 죽음을 결정하지 않고 병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리지도 않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강한 나라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