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28/나의 식구(食口)
객지에서 종종 혼자 마지못해 끼니를 해결할 때가 있다. 별로 먹고 싶은 음식도 없지만 왠지 끼니를 거르면 손해라는 부채의식으로 호구지책을 세울 때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 뜻밖의 보너스를 받는 경우가 있다. 별로 기대 하지도 않았는데 생각보다 정갈하고 맛난 음식을 만나게 되는 경우다. 그럴 경우 참 산뜻한 기분으로 나도 모르게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런데 문득 나처럼 그 집을 다시 찾고 싶은 사람들의 동행자가 궁금하다. 더러는 친구일 수도 있고 또 더러는 친지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개는 나처럼 식구일 것 같다. 식구란 같은 솥에서 떠낸 밥을 마주보고 앉아 나누어 먹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동행하는 식구란 부모 아니면 자식일 텐데 요즘은 효도보다는 내리사랑이 흔한 세상이니 맛난 음식을 우선적으로 맛보이고 싶은 사람은 염치없게도 부모보다 자식인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다음에 애들 데리고 꼭 한번 다시 와야지...”
그러나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하나, 둘 성장해서 훌쩍 도시로 떠나버린 아이들, 빈 둥지처럼 휑하게 남아버린 아이들 방을 청소하며 갱년기 부작용으로 저녁 하늘을 바라보는 아내의 뒷 모습이 갈수록 짠하다. 불면에 시달리느라 좋아하던 커피까지 끊어버린 나의 아내, 나를 만나지 않았으면 더 행복했을 것 같은 사람, 생각이 비약할수록 울컥 서글프다.
"전에 애들 데리고 가보고 싶었던 곳 어디였더라. 아내 데리고 다시 가야지..."
아무려나 식구란 그렇다는 생각이다. 무엇이든 나누고 싶은 존재다. 맛난 음식을 혼자 먹게 되면 곧바로 같이 먹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만드는 존재다. 식구가 바로 가족은 아니지만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가족의 개념도 비슷하다. 나누고 싶은 사람들의 집합체다. 나의 기쁨을 공유해 배가시켜주고 나의 슬픔은 덜어가 위로해주는 헌신적인 존재는 누가 뭐래도 세상에서 가족이 으뜸이다. 삶의 마지막은 결국 혼자일 텐데, 그때까지 삶의 후반부는 내가 아는 모든 인연들이 하나씩 곁을 떠나는 여정일 텐데, 그렇더라도 가장 마지막에 이르러 내 곁을 떠나는 사람은 비로소 가족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불행한 사람은 겸상할 식구가 없는 사람이다. 더 불행한 사람은 평소는 물론 주말에 찾아볼 가족조차 없는 사람이다. 그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식구가 있기는 있었는데 순리에 어긋나게 어느 순간 잃은 사람이다. 아무리 맛난 것을 먹어도 훗날 다시 오리라 다짐하기 어려운 사람들. 나눌 것이 있어도 나눌 대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어서 빨리 그들에게 식구가 생기기를.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이 하고 싶은 식구들, 어서 많이 만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