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33/파프리카 파는 할머니
나의 주말농장에 달린 먹음직스런 옥수수를 친구들이 거부했다. 우리 집 다섯 식구가 먹기에는 너무 많이 달려 친한 친구들에게 따다 먹으라고 선심을 썼지만 모두가 시간이 없다고 거절한 것이다. 한마디로 따다 배달까지 해 주면 먹겠는데 따다 먹을 시간은 없는 모양이다.
속이 상한 나는 그 해 옥수수 밭 전체를 고라니와 멧돼지들의 잔칫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덕분에 저녁마다 고라니와 멧돼지가 산에서 내려와 포식을 하고 갔다. 선뜻 개방한 옥수수 밭이었지만 내 속내를 알 리 없는 고라니들이 밤마다 산에서 몰래 내려와 꼼꼼하게도 따먹고 갔다. 다리가 짧은 멧돼지들도 농작물을 취하는데 이골이 났는지 짧은 다리와 무거운 몸통을 이용해 옥수수 골을 따라 차례로 넘어트리며 깨끗하게 청소하고 갔다.
참, 주말농장 농사라는 것이 그렇다. 먹을 만큼만 심고 소풍삼아 오가면 재미있는데 그렇게 남에게 나눠 줄 정도로 넓이를 조금만 넓혀도 곤혹스럽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다섯 포기씩, 열 포기씩, 온갖 농작물을 자급자족할 물량만 심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감자, 고구마, 호박, 땅콩, 옥수수, 야콘, 상추, 참외, 오이, 수박, 피망, 도라지 같은 것들을 조금씩 주말마다 심었다. 그러나 그렇게 적은 규모로 여러 종류의 작물을 심고 심어도 삼백 평 농장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무엇을 심을지 늘 고민이었는데 파프리카를 심어 보라는 할머니 한 분을 묘목시장에서 만났다.
“파프리카 좀 심어보지 그랴?”
“파프리카는 한 포기에 얼마에요?”
“삼천 오백 원여!”
“와! 피망은 오백 원인데 일곱 배나 비싸네요?”
“파프리카는 씨앗 값이 비싸서 그려. 조금만 사가.”
몇 번을 밀고 당기며 흥정을 하다 결국 일곱 포기를 이만 원에 사서 정성스럽게 심고 노랗고 탐스러운 파프리카가 달리길 기다렸다.
그런데 파프리카가 피망처럼 파랗게 열렸다. 처음에는 파랗다가 점점 노랗게 익는 모양인가 싶어 익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익지 않았다. 그러다 여름 장마가 지나고, 익지 않던 파프리카가 썩어서 떨어졌다. 아뿔싸, 파프리카가 아니고 피망이었던 것이다. 삼천오백 원짜리 파프리카 모종에서 왜 오백 원짜리 피망이 달릴까. 설마 그 할머니가 나를 상대로 일곱 배 장사라도 했다는 말일까.
이듬해 봄, 혹시나 하고 다시 찾은 묘목시장에서 파프리카 파는 할머니를 발견한 나는 득달같이 달려가 따졌다.
“할머니! 할머니한테 파프리카 묘목을 사갔는데 피망이 달렸어요.”
“엥? 증말여? 에구 미안해서 워쩐댜!”
“너무 하신 것 아니에요?”
“늙으면 죽어야지, 피망으로 사간 사람은 파프리카가 달렸댜.”
할머니는 미안하셨던지 파프리카 묘목이 몇 개 남았다며 그냥 가져가라고 하셨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할머니를 의심한 죗값도 죗값이지만 돌아가시기 전 소금 넣을 자리에 설탕을 곧잘 넣으셨던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나서다. 설탕으로 간을 한 음식이 맛있을 리 없지만 침침하신 눈으로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겨우내 나의 양말을 따뜻한 부뚜막에 데워 주셨던 일들을 생각하면 그깟 양념 따위가 무슨 문제일까. 문제가 있다면 파프리카에서 피망이 달린 이유를 헤아리지 못하고 가격에 눈멀고 결과에 눈 먼 나의 인색한 안목이었다. 그래서 나는 받지 않겠다는 할머니 손에 다시 이만 원을 쥐어드렸다. 그리고 파프리카인지 피망인지 모를 모종 다섯 포기를 다시 주말농장에 정성껏 심었다.
큰 나무는 바람에 꺾이고 뿌리째 뽑히는 일이 잦지만 작은 나무는 쉽게 쓰러지지 않는 법이다. 작은 나무가 강해서 쓰러지지 않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바람을 막아주는 큰 나무와 같은 곳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작은 나무 역시 언젠가는 큰 나무가 되어 또 다른 많은 작은 나무들에게 힘이 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이치다. 모진 바람에 가지가 꺾이고 쇠약해진 몸통을 가진 나무라 할지라도 그 나무가 베푼 지난여름의 그늘을 잊어서야 되겠는가. 올 여름에는 나의 주말농장에서 또 다시 파프리카에서 피망이 달리더라도 나는 기다리지 않고 냉큼 따먹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