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질서의 붕괴 위기

-트럼프 위험한 힘의 논리-

2026-01-12     유병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월8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부에서 “내겐 국제법이 필요 없다.”면서 힘의 논리를 강조 했다.

2026년 새해 벽두, 국제사회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미국이 전격적으로 베네수엘라를 침공한 것이다. 새벽을 틈탄 이 군사작전에는 항공기 150여 대와 세계 최정예 특수부대로 불리는 델타포스가 투입됐다. 기습 공격으로 수십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군사·기간시설이 파괴되는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미국은 작전의 최종 목표였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체포해 자국으로 압송·구금했다.

주권국가의 국가원수를 무력으로 연행한 이 장면은 중세 왕조 시대에나 있을 법한 초유의 사태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 행정부는 이번 작전을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고유한 헌법적 권한에 따른, 군의 지원을 받은 법 집행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 다수 국가는 이를 명백한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했다. 국제법 전문가들과 미국 내 비판적 여론 역시 유엔헌장 위반이자 베네수엘라의 주권을 정면으로 침해한 행위라고 지적한다.

미국은 무력을 통해 주권국가를 제압하고 그 나라의 최고 통치자를 체포했다. 나아가 ‘새 정부 수립’이라는 명분 아래 한시적 통치를 선언하고, 경제제재로 수출하지 못한 석유 5천만 배럴을 대신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단정적으로 범죄라 규정할 수는 없을지라도, 국제사회가 공유해 온 규범과 도덕의 기준에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미국의 영향권에 있는 다수 국가는 노골적인 비판을 삼가고 있다. 트럼프식 보복 정치가 불러올 후폭풍을 두려워해서다.

우리 정부는 1월 4일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베네수엘라 국민의 의사가 존중되는 가운데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대화를 통해 상황이 조속히 안정되기를 희망 한다”고 밝혔다. 원론적이지만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한미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이해할 측면이 없지 않다. 국내 정치권 역시 대체로 침묵하거나 원칙적 언급에 그치고 있으며, 일부 진보 성향 정당과 개인만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제는 이 사태를 국내 정치에 악용하는 일부 세력의 행태다. 야당 소속 다선의 한 여성 국회의원은 “지금의 한국 상황이 베네수엘라와 꼭 닮았다”는 발언을 했고, 보수 성향 종편방송의 한 앵커는 “우리만 예외일 수는 없다”는 식의 논평을 내놓았다. 극우 성향 집단은 나아가 이재명 대통령을 ‘마두로’에 빗대는 비열한 선동까지 서슴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베네수엘라의 비교 대상이 아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서 두 나라 사이에 구조적 유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종 국가 지표와 통계 수치만 보더라도 그 차이는 명확하다. 그럼에도 일부 정치권과 극우 세력이 끊임없이 거짓 정보와 공포 프레임을 유포하는 것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훼손하는 위험한 정치 선동일 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작전을 ‘마약범 체포’라는 명분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이는 표면적 설명에 불과하다. 실제 목적은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친중 성향 국가들에 대한 견제다. 2000년대 이후 중국은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 중남미 지역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지원을 통해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해 왔다. 특히 베네수엘라, 쿠바, 브라질 등 중남미 지역에서의 친중 흐름은 미국으로서도 심각한 전략적 도전으로 간주한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무력 개입은 이들 국가를 향한 경고이자 본보기로 읽힌다.

둘째는 원유 자원의 확보이다. 베네수엘라는 확인된 석유 매장량 303억8000만 배럴로 세계 1위의 자원 부국이다. 이를 개발해 자국 내에서 활용할 경우, 중동이나 원거리 국가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경제적 효율성이 높다. 차베스 정권 이전까지 베네수엘라 유전 개발은 미국 기술에 의존했으나, 이후 기술 이전이 중단되며 상당수 유전이 휴·폐업 상태에 놓였다. 미국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막대한 에너지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는 미국과 소련을 양축으로 하는 균형 속에서 유지돼 왔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에는 미국의 단극 체제가 형성됐다. 그러나 중국은 ‘평화적 도약’을 내세워 급속한 성장을 이루며 새로운 패권 경쟁자로 부상했다. 그 과정에서도 국제사회는 유엔과 국제기구의 규범을 존중하는 틀 안에서 질서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25년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제일주의’를 앞세워 이 질서를 근본에서 흔들고 있다. 보호무역 강화로 WTO 체제를 사실상 무력화했고, 주요 교역국과 관세 전쟁을 벌였다. 대규모 이민 차단과 불법체류자 추방을 단행했으며, 파리기후협정과 WHO를 포함한 다수 국제기구 탈퇴를 선언했다. 국제질서의 최후 보루인 유엔마저 공개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이후 콜롬비아, 쿠바, 심지어 그린란드까지 거론하며 노골적인 압박을 가했다.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면 조심하라”는 힘의 메시지다. 그는 “내게 국제법은 필요 없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국제규범보다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발상은 세계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되돌릴 위험한 사고다.

공동체는 규범 위에서만 존속할 수 있다. 국제사회 역시 유엔헌장과 국제법, 각종 협약을 통해 유지돼 왔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국제사회의 ‘맏형’으로서 규범 준수에 솔선수범해야 할 책임이 있다. 역사는 독선과 오만으로 질주한 패권국은 결국 몰락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제일주의는 국제질서를 파괴하는 선택이다. 남은 임기 동안 세계를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행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고, 중국의 대만 침공에 위험한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 강대국 간 패권 경쟁이 통제 불능으로 치달을 경우,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 또한 결코 가상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국제질서의 붕괴는 어느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 공동체 전체의 위기다. 지금 필요한 것은 힘이 아니라 규범이며, 독주가 아니라 공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