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46/환타 단상
늘 먹을 것이 부족했던 나의 초등학교시절을 기억하다 보면 하나같이 미련하고 우스운 추억뿐이다. 가슴에 새겨진 편린들을 하나 하나 곱씹다 보면 미련했던 그날의 선택에 빙그레 웃음 짓기 일쑤다. 그 중에서도 유독 기억이 새로운 것은 소풍에 대한 일화다.
봄 소풍과 가을소풍, 일 년에 두 번씩 치러지는 행사였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우리 집 다섯 형제가 번갈아 들고 다니는 나들이가방에 김밥 두 줄과 환타 한 병씩을 넣어주셨다. 그 품목이 초등학교 6년간 얼마나 한결같던지, 소풍 가는 날은 “김밥과 환타 먹는 날”로 생각되었다. 요즘같이 먹고 싶으면 먹는 음식이 아니고 소풍날에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김밥과 환타 먹는 날”이라 명명되어도 아이들에겐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참 무던히도 소풍날을 기다렸는데 그 달콤한 날에 내겐 남모르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바로 환타를 먹는 일이었다. 김밥이야 먹고 싶을 때마다 나눠먹으면 그만이지만 환타는 그게 안됐다. 요즘같이 멋지고 아담한 캔에 포장된 게 아니고, 초등학생이 혼자 먹기에 좀 많다 싶은 양이 주름지고 무거운 유리병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개봉하고 나면 다 먹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남기자니 뚜껑이 닫히지 않아 보관이 불가능했고 한꺼번에 다 먹자니 너무 많았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나눠먹으면 좋겠지만 그러자니 어린 마음에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을 것 같았던 환타를, 일 년에 두 번밖에 먹을 수 없었던 그 환타를, 친구들과 선뜻 나누어 먹기에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다. 가난하고 배고팠던 내겐 그런 배짱이 없었다.
청년이 되어 군사훈련을 받던 훈련병 시절에도 나는 배가 고팠다. 보릿고개도 아니고 하루 세끼, 일 식 삼찬이 보장된 메뉴였지만 매시간 배가 고팠다. 50분 훈련에 10분 쉬는 단조로운 육체훈련은 나로 하여금 돌아서면 배고픈 먹보로 만들었다. 나 뿐 아니다. 동료들의 심리도 같아서 식사대열로 집합하라는 방송이 나오면 앞줄을 차지하려고 모두가 아우성이었다. 나 역시 항상 앞줄에 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재빠르지를 못해 아무리 서둘러도 내 줄은 언제나 중간 이하였다.
하여 궁리해낸 꾀가 차라리 맨 뒤에 줄을 서자는 것이었다. 앞줄에 서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뒷줄에 서면 운이 좋은 날은 가라앉은 고깃덩어리라도 많이 먹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재수가 없는 날은 음식이 모자라 고깃덩어리는커녕 국물도 마실 수 없었지만, 김치와 단무지만으로 밥을 먹는 모험을 감수하면서도 끝줄에 서는 것을 고수했다. ‘설마 계속 재수가 없기야 할까’ 하는 기대심리도 있었지만 그만큼 배고파서 생긴 오기였다.
그런데 나는 요즘도 가족들과 외식을 할 때 닭볶음탕이나 어린 날에 먹던 음료수를 고집하곤 한다. 집사람은 살이 찐다고 닭고기를 싫어하고 애들도 어디서 들었는지 탄산음료가 성장을 방해한다고 꺼리는 편이지만 나는 여전히 그것들이 좋다. 선천적으로 닭고기를 선호하는 경향도 있고 달달한 맛을 즐기는 식성 탓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어린시절 소풍에 얽힌 아련한 추억이나 찌든 훈련소생활에 얽힌 향수 때문 같다. 먹다 남으면 보관이 어렵고, 혼자 다 먹자니 너무 양이 많고,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나눠주자니 아까웠던 그 환타가 아직도 기억 속에서 아른거리는 것이다. 늦게 먹더라도 고깃덩어리로 공복을 채워보려던 내 젊은 날의 욕망이 여전히 가슴속에 살아있는 것이다.
바다에 사는 작은 물고기인 복어는 커다란 상대를 만날 때마다 자신이 커 보이려고 헛배를 빵빵하게 부풀린다고 한다. 그런다고 작은 복어가 고래나 상어처럼 크는 것도 아니고 누가 무서워하지도 않을 테지만 복어는 그렇게라도 해야 위안이 되는가보다.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도망치는 것보다 내 보기엔 열 배쯤 아름다운 몸짓이다. 어쩌면 복어는 그렇게 하면 진짜로 자신이 커다랗게 보여 다른 물고기들이 피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로서는 그런 착각이 밉지가 않다.
이제 와서 마음껏 환타를 먹는다고 그날의 설렘이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이제 와서 실컷 닭볶음탕을 먹는다고 그날의 허기가 달래지지도 않을 것이다. 어쩌면 복어 헛배불리기 같은 자기도취거나 착각일 것이다. 이미 나올 대로 나와 버려 볼품없이 늘어진 나의 아랫배에 환타나 닭고기를 잔뜩 채워본다 한들 아내는 운동이나 하라고 핀잔이나 줄 것이다. 먹을 것에 관한 한 부족함을 모르는 애들이 내 속내를 알아줄 리도 만무하다.
그러면 어떤가. 앞으로도 나는 외식 때마다 호시탐탐 닭볶음탕을 노릴 것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후식으로 환타도 즐길 것이다. 마치 복어 헛배처럼 아랫배를 빵빵하게 부풀리고 나의 오랜 무용담을 애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기름진 닭고기나 환타를 즐긴 죄로 건강검진 때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점점 더 높게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것들의 유혹을 절대로 뿌리치고 싶지 않다. 최대한 배고플 때까지 기다렸다가 환타 한 병을 기어코 혼자 다 마셨던, 마시다 힘에 겨우면 중간 중간 소피도 보고, 끄윽- 트림까지 하면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마셨던 어린 날의 기억들을 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