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49/고라니의 죽음Ⅱ
현재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고라니의 숫자가 무려 70만 마리 이상이라고 한다. 이는 전 세계에서 살아가는 고라니 개체수의 90%에 해당하는 수치다. 어떻게 해서 유독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고라니가 살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고라니를 사냥할 상위포식자가 우리 땅에서 멸종되었기 때문이다. 호랑, 늑대, 표범 같은 종들인데 해방 후 헐벗은 산을 버티지 못했거나 무분별했던 사냥이 주원인이다. 중국 등 북방에서 다시 내려올 수는 있었는데 휴전선의 철책 때문에 대한민국은 도저히 내려올 방법이 막혀버렸다. 덕분에 고라니 개체 수가 급격하게 많아진 거다. 담비나 삵 같은 개체라도 고라니를 사냥하면 좋았는데 그들로서는 스스로 좋아하는 먹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는 고라니 천국이 되었다.
그렇다면 고라니 숫자는 계속해서 더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져야 맞다. 그런데 왜 고라니는 어떻게 현재의 개체 수를 유지하고 있을까. 이유는 황당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자동차가 상위포식자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산의 먹이사슬에서 식량이 부족해진 고라니들은 어쩔 수 없이 인간들의 세상에서라도 먹이를 찾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하나, 둘 자동차에게 희생되기 시작했다. 차들이 고라니를 먹을 리 없지만 마치 상위 포식자처럼 앞길을 방해하는 고라니를 무차별적으로 제거하는 풍경이다. 본의 아니게 자동차가 고라니의 강제적인 개체수 안정화에 기여하게 된 것인데 다행이라기보다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아무려나 고라니는 고라니 세상에 살아야 하고 사람은 사람 세상에 살아야 한다. 각자의 세상에서 평온을 잃게 되면 세상은 종종 고라니와 자동차처럼 천연의 질서가 헝클어지게 된다. 그런데 그 또한 사실은 자정작용이다. 인간의 개체수를 가끔 전염병이나 전쟁이 조절하는 것처럼 동물들의 세상에도 뜻밖의 질서유지가 있다고 본다. 불편하더라도 종국에는 앞으로 나가기 위한 일종의 동과 반동 같은 것 아닐까. 살인자도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본보기라도 되는 것처럼 세상에 이유 없는 존재가 어디 있으랴. 기왕에 만들어진 인간이 만든 장벽을 동물들이 한 마리라도 더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야생동물 이동통로라도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