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깊은 울림을 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아내와 함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옆자리의 아내 역시 손수건을 쥔 채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우리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감동과 아쉬움이 뒤섞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귀가하는 차 안에서도 부부는 조용히 느낌을 나누며 먹먹한 가슴을 달랬다.
이 영화는 1457년 계유정난 이후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비극적 삶 가운데 한 단면을 다룬 역사물이다.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과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영월 산골 촌장 엄흥도의 인간적 인연을 재조명했다. 단순한 사극을 넘어 권력과 욕망, 그리고 인간적 의리와 연민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이야기의 전개는 짜임새가 탄탄하다. 초반에는 소소한 웃음으로 문을 열고, 중반부에는 역사적 현실의 무게로 긴장감을 더하며, 후반부에는 뜨거운 인간애로 깊은 울림을 남긴다. 배경음악 또한 장면마다 절묘하게 어우러져 감정을 배가시킨다. 한마디로 관객을 미소로 시작하게 했다가 결국 눈물로 마무리하게 만드는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다.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인상적이었다. 특히 엄흥도 역의 유해진, 노산군을 연기한 박지훈, 한명회 역의 유지태, 금성대군 역의 이준혁의 연기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가운데서도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유해진의 절절한 연기는 관객을 끝내 눈물짓게 만들었다.
장항준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2월4일 개봉한 이후 연 15일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사랑을 받고 있다. 누적 관객 수 7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몰이를 이어간다. 영화계에서는 2년 만에 1000만 관객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내다본다. 오랜만에 극장가에 묵직한 울림을 안긴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우리 부부에게 이 영화는 더욱 각별하다. 55년 전, 우리는 영월읍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매년 단종문화제에 참여하며 자연스레 단종의 이야기를 접했다. 그래서인지 청령포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남다른 관심을 끌었다. 평소 극장을 자주 찾지 않는 우리지만, 이 작품만큼은 꼭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부부는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깊은 감동을 나누었다. 굳이 작은 바람을 덧붙이자면,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지게로 운구하여 장릉에 안치하는 장면을 엔딩에 추가했으면 어땠을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욕심으로 조금의 아쉬움은 남는다.
12세 이상 관람가인 이 작품은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특히 영월과 인연이 있거나, 인근 지역에 사는 이들이라면 더욱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역사 속 인물의 비극을 통해 인간다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 오래 기억에 남을 명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