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찬.이원재씨, 제천시민 꿈틀운동 백년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충북 제천은 ‘제베리아’라고 불린다. 제천과 시베리아를 합친 말로 그만큼 추운 고장이다.
눈발이 흩날리고 바람까지 매서웠던 3월 초순 제천시민회관 앞 광장에서 ‘제천시민 꿈틀운동 백년회’를 이끌고 있는 신종찬(57) 대표와 이원재 사무국장을 만났다.
두 사람은 제천 대제중학교 동기동창으로 이른바 절친이다.
쌀쌀한 날씨에도 광장 한편에는 서명판이 놓여 있었다. 몇몇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이름을 적고 지나갔다.
제천을 살리자는 시민운동, 이름하여 ‘꿈틀운동’의 현장이다.
두 사람이 지역 문제에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계기는 제천을 통과하는 고압 송전선로 계획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지역 현안 대응을 넘어 제천의 지난 시간을 반추하고 미래를 설계하자는 쪽으로 생각이 깊어졌다.
지난해 말에는 ‘제천시민 꿈틀운동 백년회’를 중심으로 제천문화회관에서 시민 대토론회도 열었다.
주제는 ‘100년의 희생, 100년의 보상, 100년의 미래’였다.
백년회는 제천이 오랜 시간 국가 정책 속에서 여러 희생을 감당해 왔다고 주장한다.
일제강점기에는 항일 의병 활동의 중심지였고, 이후 수도권 전력 공급과 상수원 확보를 위해 건설된 충주댐으로 큰 희생을 치렀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충주댐 전체 수몰지역 가운데 약 64%가 제천 지역에 해당하고 단양이 26%를 차지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두 지역이 대부분의 수몰지를 감당했지만 충분한 보상이 이뤄졌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제천 탄약창과 미사일 기지 건설, 최근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고압 송전선로 문제까지 겹치면서 지역이 반복적으로 부담을 떠안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백년회는 이런 상황을 두고 시민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천은 왜 그동안 침묵했는가. 그리고 또다시 침묵할 것인가."
신종찬 대표는 "제천은 국가 정책에 협력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정당한 보상과 존중을 받은 적도 없었다"며 "이제는 시민이 직접 구조를 바꿔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년회 발족 선언문에는 이런 문장이 담겼다.
"제천의 지난 100년은 희생의 역사였다. 다음 100년은 선택의 역사로 만들겠다."
백년회라는 이름 역시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지난 100년의 희생을 돌아보고 앞으로 100년의 미래를 시민 스스로 선택하자는 뜻을 담았다는 설명이다.
현재 백년회 운영위원은 70여 명 규모로 특정 정당이나 정치적 색채를 배제하기 위해 나름 노력한다.
이들이 내놓은 요구는 단순하다. 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부터 공공기관 제천 우선 이전, 국립의병기념관 및 교육수련원 건립, 국가 특화산업단지 지정 등이다.
시민단체의 주장답게 다소 거칠고 현실성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것이 오랫동안 소외돼 온 지역 시민들의 절박한 목소리라고 말한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천도 이제는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 ‘꿈틀운동’이라는 이름도 나왔다.
이 운동이 연속성을 갖고 장기적으로 힘을 얻기위해서는 시민 참여가 필수적이다.
온라인 단체 대화방에는 1천200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하고 있다. 직장인과 자영업자, 청년, 은퇴자 등 다양한 시민들이 지역 현안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하지만 시민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항상 따뜻한 것만은 아니다.
"혹시 돈 벌려고 하는 것 아니냐, 나중에 선거에 나오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신종찬 대표는 그럴 때마다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신 대표는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는 사업가다. 중장비와 포클레인을 운영하며 현장을 직접 챙긴다. 그러나 겨울 내내 서명운동과 홍보 활동에 매달리다 보니 생업은 사실상 뒤로 밀렸다.
"정확히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수천만 원 정도 손해를 본 것 같습니다."
이원재 사무국장 역시 제천 일대에서 주유소 여러 곳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둘다 바쁜 일정이지만 매일 매일 현장을 지킨다.
"지역에서 아이 키우며 돈 벌어 살아온 사람들 아닙니까. 어려울 때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석유난로 하나로 비바람을 마주한 시민회관 앞 광장에는 훈훈한 장면도 이어졌다.
행인들이 손을 흔들며 "파이팅"을 외치고, 어떤 이는 따뜻한 커피를 건네기도 했다. 또 다른 시민은 빵 봉투와 함께 후원금을 놓고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이런 응원이 가장 큰 힘입니다."
백년회는 오는 21일 오후 1시 제천예술의전당 광장에서 출범식과 시민 대통합 행사를 연다.
어린이 보물찾기와 시민 나눔 행사, 지역 출신 연예인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TV와 냉장고, 세탁기 등 1천만 원 상당의 경품도 준비했다.
일각에서는 시민운동 행사에 경품까지 준비하느냐는 곱지않은 시선도 있지만 백년회 측은 그만큼 절박한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신 대표는 "요즘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이 쉽지 않다"며 "경품 때문이라도 좋으니 시민 한 분이라도 더 와서 제천의 미래를 함께 걱정하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꿈틀운동’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중앙정부는 지방 소멸의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지역 정치권 역시 시민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봐달라는 절규다.
광장 네거리 신호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무심한 도심 한복판에서 제천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조용히 사라져 가는 지방 도시가 마지막으로 꺼내든 작은 ‘꿈틀’처럼 보였다.
출처 : 충청매일(https://www.ccd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