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57/바나나를 먹으며
아르헨티나로 창업 이민을 간 친구가 있었다. 그곳에서 봉제공장 비슷한 사업을 했는데 더운 지방 사람들은 우리처럼 악착같이 돈을 모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딘가 꼭 쓸 목적이 있을 때만 취업을 하고 취업기간도 딱 쓸큼만 벌고 다시 퇴사한다는 거다. 이유는 길거리에서 대충 자도 얼어 죽지 않을 뿐더러 가는 곳마다 지천인 바나나 열매만 먹고 살아도 굶어 죽을 일은 없기 때문에 게으른 습성이 생긴 것 같다고 한다.
그렇게 흔하고 흔한 바나나가 우리나라에서는 참 귀한 시절이 있었다. 오죽했으면 외교관 한 명이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출장을 갔는데 바나나가 먹고 싶어 죽겠는데 자꾸 수박을 권해 곤혹스러웠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우리에겐 흔한 수박이 아프리카에는 무척 귀하고, 반대로 귀한 바나나가 그곳에선 흔해서 생긴 에피소드라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난다.
아무려나 그런 바나나를 어린 시절 나는 서울 사는 고관대작의 집에서만 먹는 과일이라고 믿었다. 당시 시골마을에는 첫 딸을 낳으면 초등학교를 졸업시킨 후 서울의 부잣집에 식모살이를 보내 남동생들의 학비를 충당시키던 웃기는 세월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식모살이를 하던 동네 누나들이 명절에 집에 오면 동네 꼬마들을 모아놓고 자랑을 했다. 나는 꿈에서나 먹던 바나나를 심심할 때마다 먹는다는 무용담이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누나가 없는 내가 얼마나 불행한 처지인지 한숨을 내쉬기만 했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를 따라 5일장 구경을 가게 되었다. 그때 과일가게 진열장에 쌓인 바나나 꾸러미가 눈에 들어왔는데 도저히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얼마나 침을 크게 삼켰는지 꿀컥, 꿀컥 심장 떨리는 소리를 내다 “엄마 바나나!”하고 어머니에게 간절한 눈초리를 보냈다. 동생 역시 질세라 “나도 바나나!”하고 덩달아 보챘다. 어머니는 한참을 망설이다 바나나를 딱 한 개 사서 반으로 나눠 우리 형제들에게 주셨는데 동생과 나는 맛있다는 생각보다는 과연 누구 것이 더 크게 잘려졌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요즘은 바나나가 참 흔한 세상이다. 흔하다 보니 맛도 별로다. 좀더 작고 당도가 높은 원숭이바나나가 인간의 식용이고 흔히 먹는 바나나는 동물이 먹어야 할 사료용이라는 얘기까지 들린다. 그렇더라도 추억이 가난한 나는 아직 바나나가 좋다. 향수를 먹는 거라 그렇고 먹다보면 이미 먼 길을 떠나신 어머니를 만나기 때문이다. 열대지방에서만 자란다는 그 귀한 바나나가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큰다. 쭈욱 쭈욱 추억이 크고 향수도 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