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실추(敎權失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옛이야기라는 탄식이 나온다.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물론 특정 사안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교사, 학생, 학부모는 삼위일체가 돼야한다.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교육공동체를 꾸려야 하니까.
우리 선조들은 충(忠)ㆍ효(孝)ㆍ예(禮)를 중시했다.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라고 규정하고 모든 행동의 근본으로 삼았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소수서원을 찾았다. 조선 중종 38년(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로 지방사립교육기관인 백운동서원을 세웠다. 퇴계 이황 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직하던 1550년 명종이 친필로 사액을 내리면서 소수서원은 최초의 사액서원이 됐다. 왕이 편액, 서적, 토지, 노비 등을 하사해 그 권위를 인정해줬다.
소수서원은 1963년 사적 제55호로 지정받았으며 2019년 7월 6일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서원의 역할은 여러가지였다. 먼저, 지방에서 유학 교육을 통해 지식인을 양성했다. 존현과 강학이라는 기능에 따라 제사도 지냈다. 문집이나 서적을 펴내는 장판고, 이를 보관하는 서고를 갖췄다.
소수서원 옆에는 경북 영주시가 조성한 선비촌이 있다. 선비정신을 계승하고 우리 고유의 사상과 생활상을 체험하고 공부하는 장소다. 관람료는 어른이 2천원이다. 광주(경기도), 양주, 여주, 파주, 원주,청주, 충주 등 동주 시민은 50% 감면해준다.
선비촌을 통해 입장하니 선명한 파란색에 하얗게 피어오르는 구름이 푸른 소나무숲으로 안내한다. 소백산 국망봉과 비로봉 사이에서 발원하여 죽계구곡을 따라 내려온 죽계천이 반겨준다.
'서원둘레길' 안내판을 보니 보물을 찾은 듯 기쁘다. 왼쪽은 선비촌, 오른쪽은 소나무숲이다. 주저없이 소나무숲으로 향했다.
둘레길은 매표소를 시작으로 취한대와 광풍대, 소수박물관, 영귀봉, 소혼대를 잇는 1.3㎞ 구간이다. 그러나 박물관과 전시실을 둘러보다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가족단위 관람객이 눈에 많이 띈다. 노모의 걸음에 맞춰 걷는 중년부부,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따라가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이곳의 소나무는 몸가짐이 장엄하다. 푸른숲은 웅장하다. 빽빽한 소나무 틈으로 비춰지는 햇살을 손에 쥐어 본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 나가는 빛줄기가 눈부시다. 웨딩촬영 나온 선남선녀의 설렘과 부끄러움이 보는 이들에게 행복을 준다.
예비부부의 모습에 미소짓는 순간 커다란 소나무 바로 아래에서 발아한 가늘고 작은 아기 소나무를 본다. 세상을 이어주는 이치이자 예비부부를 축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수서원 일대 1300여 그루의 적송은 문화재다. 겨울에도 푸른 소나무처럼, 유생들도 참 선비가 되라는 의미를 담아 학자수(學者樹)라 부른다.
소나무 우거진 숲 사이를 흐르는 죽계천 돌다리를 건너 취한대로 향한다. 징검다리로 내려가기전 하늘을 향해 솟은 두 개의 기둥을 만난다. 통일신라시대 세워진 숙수사지 당간지주이다. 이곳이 절터였음을 말해준다.
돌다리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힘차다. 자연스레 손을 등 뒤로 모아서 선비처럼 걷는다.
취한대는 퇴계 선생이 1549년(명종4년)에 만든 정자다.
많은 유생들이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시를 짓고 학문을 익혔을 것이다. 취한대란 이름은 송취한계(松翠寒溪)에서 따 온 것으로 푸른 산의 기운과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의미다.
유생들의 글읽는 소리가 죽계천 우렁찬 물소리도 잠재운다. 햇빛에 비친 물결이 잔잔하다. 고운 모래위 단단한 바위가 죽계천을 지켜준다. 주세붕 선생은 '경(敬)' 이라는 한자를 바위에 새겼는데 '마음을 곧게하고 행동을 반듯하게 한다'는 뜻이다.
'경'자 위에는 소수서원의 원래 이름인 '백운동(白雲洞)'이 각자됐다.
'경'을 되뇌이며 푸른빛 고요한 오솔길을 걷는다. 우거진 숲을 가로지르는 맑은 물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느덧 발길이 소수박물관에 멈췄다.
영주시는 지난 5월 31일부터 내년 2월 29일까지 소수박물관 별관 기획전시실에서 <선비, 꿈과 이상을 걸다.현판懸板>이라는 행사를 한다.
소수서원과 영주지역의 옛 건물에 걸렸던 편액(扁額), 명언이나 각종 기록을 담은 기판(記板), 시를 담은 시판(詩板) 등을 전시중이다.
1부 ‘배우고 새기다’라는 주제로 소수서원, 의산서원 등 서원에 걸렸던 현판이 소개된다.
2부는 '추모. 기다리다'의 의미를 담아 사당과 재실에 걸렸던 현판들을 전시하고, 3부에서는 지역의 고택과 정자에 걸렸던 현판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는 ‘머물며 수양하다’를 주제로 진행한다.
진한 묵향이 전시장을 고풍스럽게 한다. 코끝에 닿는 오래된 먹 냄새가 은은하고 오묘하다. 어렵고 무거웠던 한문이 다양한 모양으로 현대식 폰트에 뒤지지 않는다.
오래된 나무판에 담긴 성대한 서체가 가슴 벅차게 다가온다. 품격있는 글씨가 천태만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경건하게 한다. 세월 속에서 부서지고 비틀어진 현판이 전시장을 엄숙하게 만든다. 현판에는 선조들의 철학과 가치관이 그대로 녹아있다.
이제, 바람이 걸음을 쉬게 하는 곳! 광풍정(光風亭)쪽으로 걸어본다. 본래 '광풍대'라고 불리었는데, 퇴계 이황이 '제월광풍(霽月光風)'에서 따서 붙인 이름이다. 마음이 넓고 쾌활하여 아무 거리낌없는 인품을 말한다.
죽계천 백운교 아래로 고운 모래가 물살에 씻겨 내려간다. 나뭇잎이 죽계천 위로 살포시 내려 앉는다. 탁청지를 재현한 인공연못이 제법 그럴싸하다. 못을 가득 채운 연잎이 이슬처럼 싱그럽다.
경렴정(景濂亭) 옆으로는 수령 500년을 훨씬 넘긴 보호수가 있다.
여전히 탐스러운 은행잎을 보니 앞으로 몇백년은 건재할 것 같다.
경렴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 가운데 하나로, 소수서원 원생의 풍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원생이나 유림의 모임, 시회 개최, 풍류와 심신 수양 등의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오후가 되니 햇살이 더욱 강해지며 세상의 모든 빛이 둘레길을 비춰준다. 명품이란 말이 안성맞춤인 곳이다.
둘레길의 끝은 작은 언덕이다. 거북이가 알을 품은 모습이라고 해서 영귀봉(靈龜峰)이라 부른다. 언덕을 돌아서면 서원 밖 소혼대이다. 소혼대는 조선시대 원생들을 만나러 온 사람들이 석별의 정을 나누던 장소다. 그들의 작별 만큼 둘레길의 끝도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선례후학(先禮後學).
학문보다 예의가 우선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우리 선조들은 예(禮)를 우위에 뒀다. 사람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품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경(敬)'자 바위의 글씨처럼 '자연의 섭리와 본성을 잘 따르는 삶'이 사회에 퍼지기를 기대하며 서원밖으로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