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걷기 열풍이다. 

발은 몸 가장 아래쪽에서 체중을 지탱한다. 인체는 약 206개의 뼈로 구성돼 있는데 양쪽 발에만 52개가 있다. 이는 몸 전체의 4분의 1 정도이다. 발에는 몸에서 가장 굵고 강한 근육이 있다. 인대가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쪽 발은 뼈 26개, 관절 33개, 근육 64개, 인대 56개로 이뤄져 있다. 발에는 수많은 혈관이 있어 '제2의 심장'으로 불린다. 발마사지, 발반사요법 등 건강을 위해 발 곳곳을 자극한다. 맨발로 걷는 것도 발바닥 곳곳을 지압해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곳곳에 맨발로 걷는 길이 등장했다. 나의 첫 맨발 길은 문경새재로 기억한다. 충북 단양 천동 다리안관광지에는 황토볼을 이용한 맨발 걷기 코스가 있다. 경북 영주 서천 뚝방길에도 맨발로 걷도록 황토길을 조성했다.  

강원도 원주시 운곡 솔바람숲길은 맨발 걷기의 성지같은 곳이다. 치악산 둘레길 1구간인데 기존 등로 옆에 맨발용 흙길을 냈다. 솔향 가득한 소나무 숲을 맨발로 걸어가니 그야말로 힐링 명소다. 

원주얼교육관에 주차하고 안내판을 본다. 운곡고개를 시작으로 벤치쉼터-솔바람삼거리-돌개삼거리-덕성골삼거리-운곡삼거리-운곡고개로 연결되는 2.7㎞ 순환길이다. 

주차장 한쪽에 세족장이 있다. 삼삼오오 모여 발 씻는 표정을 보니 길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보였다. 차도를 건너 숲길로 다가간다. 푸른나무 그늘 아래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이 얌전하다. 

'운곡 솔바람숲길' 문패를 보니 설렌다.
활짝 열린 대문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숲을 빽빽하게 채운 소나무의 매력에 빠져든다. 솔향의 상쾌함과 피톤치드향이 환상의 짝꿍이다.  

숲은 훼손없이 자연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붉은 흙길은 스펀지처럼 폭신하고, 맨발은 흙속 양분을 온전히 수용한다. 
풀벌레소리와 산새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고조된 심박수는 적당한 템포로 몸을 유연하게 한다.

며칠전 퍼붓던 비때문에 땅이 질퍽하고 미끄럽다. 맨발에 엉거주춤 댄스를 선보이며 진흙구간을 통과하는 이들을 보니 웃음이 난다. 등산용 스틱이나 나무지팡이가 필요하다. 

아빠의 경쾌한 휘파람소리에 발맞춰 내려오던 가족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진흙 오선지에 엇박자를 낸 휘파람 소리따라 자세가 엉거주춤하다. 

발가락 사이사이 진흙이 나온 모습을 보니 어릴적 모내기하던 어르신들이 떠올랐다. 거머리가 붙은 것도 모른체 정신없이 일하던 시절, 맨발과 맨손이 당연했다. 그 당시 산과 들은 어른들의 일터이자 아이들에게는 놀이공간이었다.

오르막을 오르자, 벤치쉼터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오늘도 오셨네요"
"네~ 또 뵙네요. 저 뒤 마사토 길은 괜찮은데 진흙길은 위험하네요. 조심해야겠어요" 

딱봐도 이웃사촌이다. 숲에서 만난 숲길 사촌의 주고받는 인사가 정겹다. 

곳곳에 마련된 벤치는 걷는 사람들을 여유롭게 한다. 솔내음이 사람들을 머무르게 한다 .

덕성골 삼거리에서 치악산둘레길 국형사 방향으로 걷기를 이어갔다.
졸졸졸 옹달샘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쪼그려 앉아 손을 담가본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진정된다. 

오솔길 양옆으로 떨어진 밤송이가 알차다. 밤 줍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고 단단한 알밤이 달다.

사유지를 가로질러야 하는 지점에서 발길을 돌렸다. 

태양이 내뿜는 에너지가 소나무 숲을 뚫고 들어온다. 푸른 소나무가 눈부시다. 돌아오는 길, 운곡 원천석 선생 묘역으로 향했다. 운곡 솔바람숲길도 따지고 보면 선생과 관련이 깊다. 묘역으로 가는 길에 그의 필적을 보니 성정이 짐작됐다. 반듯하고 올곧은 성품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볕 좋은 푸른 언덕 위에 잠든 선생을 추모하는 후손들의 정성도 전해졌다.

운곡 원천석 선생은 원주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이다. 원주 원씨의 시조인 그는 고려말 조선초 학자이자 문인으로 문장과 학문이 뛰어났다. 하지만 출세를 단념한 채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지냈다. 그는 이방원의 어릴적 스승으로 태종이 즉위 후 여러 차례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치악산에 있는 그의 집까지 찾아왔으나 자리를 피했다.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나서야 백의(白衣)를 입고 서울로 와 태종을 만났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은 <운곡시사>다.

문명의 발달로 생활이 편리해졌다. 부와 명예를 위해서는 과정보단 결과를 우선시한다. 반대급부로 환경 오염, 인간 관계의 황폐화 등 문제에 직면했다. 좋은 신발 놔두고 맨발로 걷는 이들을 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중첩됐다. 마음이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는 머리보다 몸을 써야 한다. 가는 방향이 맞다면 더디가는 시계도 필요하다. 명분을 지키기위해 출세 대신 밭을 일궜던 운곡 선생 묘역에서 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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