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별천지'
여자아이들이 어릴 적 사후 자신이 가게 될 곳을 알아보는 이름점이다.
(꽃은 꽃나라, 별은 별나라, 천/ 천국, 지/지옥)
점치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사후세계를 알려주었다.
이름의 자음과 모음을 하나하나 꾹꾹 눌러 쓰며 '꽃별천지 꽃별천지' 정성스레 주문을 외는 그 모습이 기억났다. 산과 들에 만개한 꽃을 보니 불쑥 그 장면이 떠오른다.
소백아(소백의 아침을 여는 사람들) 동아리 정기산행이 지난 토요일 있었다. 진달래로 유명한 비슬산이 목적지다. 비슬산은 최대 규모의 참꽃 군락지가 유명하다. 지역에서는 해마다 개화 시기에 맞춰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경북 청도군과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걸쳐 있는 비슬산은 높이 1084m 천왕봉이 가장 높다.
명칭과 관련된 설은 여러가지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달성군지>에는 비슬산을 일명 포산(苞山)이라고 기록하였다.
포산은 수목에 덮여 있는 산이란 뜻이다.
<유가사사적(瑜伽寺寺蹟)>에는 산의 모습이 거문고와 같아서 비슬산(琵瑟山)이라고 하였다. 유가사, 소재사, 용문사, 임휴사, 용천사 등 많은 사찰이 있다.
오늘 산행코스는 유가사 주차장-도통바위-천왕봉-진달래군락지-대견사-유가사 계곡-유가사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는 10㎞ 구간이다.
오전 7시40분 유가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일찍 출발했는데 이미 여러대의 차가 빼곡하다. 무료 주차장이지만 화장실이 깨끗하다. 빵과 과자로 요기를 하고 8시쯤 산행을 시작하였다.
임도를 따라 유가사로 향한다. 우측으로 공들여 쌓은 돌탑이 시선을 끈다. 정성이 전해지며 어떤 소원도 이뤄지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돌탑을 지나자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었다.
천왕봉까지 3.35㎞인데 울퉁불퉁 돌길과 계단이 가파르다.
자갈길이라 걸음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발을 내디딘다. 돌길이 익숙해지자 주변 산세가 눈에 들어온다. 멀리 보이는 기괴한 암석, 새로 나온 연한 푸른 잎이 뽀빠이의 시금치처럼 기운나게 한다. 천천히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좋은 기운을 챙긴다. 새순이 주는 설렘에 걸음이 가볍다.
길 중간중간 나뭇가지가 꺽였거나 반토막으로 쓰러져있다. 긴 세월동안 수많은 비바람을 견뎌냈을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비탈길에 지쳐 기진맥진할 무렵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눈을 떼지 못하고 줄을 따라가보니 천왕봉 정상이다.
늘어선 사람들을 배경으로 손톱만해진 정상석과 나란히 인증샷을 남겼다. 정상에 펼쳐진 억새를 보니 가을이 기대됐다. 널찍한 정자에 앉아 목을 축이며 땀을 식힌 뒤 참꽃 군락지로 향했다.
봄향기 가득한 숲 뒤로 여름이 바짝 뒤쫓는다. 하늘 한복판 뜨거운 열기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참꽃 군락지까지 2.37㎞ 남았다.
먼발치 분홍빛 들판이 장관이다. 참꽃 군락지의 고운 자태에 사람들의 웅성임이 커졌다. 진달래 군락지에 다다르니 진달래반 사람반이다.
만개한 진달래꽃에 콧노래가 절로 난다. 아직 피지 않은 어린 꽃봉우리도 곧 피어오를 것이다. 꽃밭 사이사이 쉼터에 모여 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꽃보다 아름답다.
계속되는 진달래 행렬에 내 걸음이 위풍당당하다. 붉은 꽃물결이 넘실거린다. 낯선 이곳이 눈에 익었는데 연분홍 빛깔의 소백산 철쭉과 닮았다.
군락지를 지나 대견사로 걸음을 옮겼다. 길 가운데 자리잡은 기바위를 보고 소원성취한다는 말에 두 팔을 벌려 힘껏 안았다.
'크게 보고, 크게 느끼고, 크게 깨우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대견사는 조계종 동화사의 말사다. 신라 헌덕왕 때에 보당암(寶幢庵)으로 창건된 천년고찰인데 조선 세종 때 대견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7년 강제 폐사돼 한동안 삼층석탑 흔적만 남게 되어 ‘대견사지’라고 불렸다.
2011년 11월 대구 달성군과 동화사에 의해 전각 재건공사가 시작돼 2014년 삼일절에 맞춰 기공식 및 기념식을 했다. 벼랑 끝에 세워진 삼층석탑은 1988년 가장 먼저 복원됐다. 대견사 앞으로 펼쳐지는 산자락 능선이 일품이다.
대견사 마당에 마련된 식수대 물맛이 끝내준다. 인근 기묘한 모양의 바위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상감모자 바위, 뽀뽀바위, 백곰바위, 큰거북바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바위와 마주하니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빙하기 암괴류(岩傀流, ‘돌강’)라 불리는 곳을 마주했다. 둥굴고 각진 암석들이 집단적으로 쌓여 있거나 흘러내리는 너덜지대는 규모도 크고 최장(最長)이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대견사를 지나자 인파가 줄어든다. 크고 작은 바위와 자갈로 꽉 채워진 너덜길에 신경이 곤두선다. 산새소리가 날카로운 마음을 달래준다. 계곡물소리가 새소리와 찰떡호흡이다.
발에 치여 데구르르 굴러가는 솔방울이 눈에 들어왔다. 누런 솔방울과 솔가지가 겨우내 흙의 양분이 되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자연 생태계와 우리 삶이 오버랩되었다.
봄을 가득 담은 비슬산. 산허리를 휘감은 암괴와 푸른 능선, 만개한 진달래가 병풍처럼 펼쳐지는 아름다운 꽃나라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