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에는 영양실조가 심했고 폐병 환자도 많았다. 제대로 먹지 못한 몸으로 기침을 오래 끌면 병은 더 깊어졌다. 사람들은 나중에 그 병을 폐결핵이라 불렀다. 특히 기름기 있는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한 탓이 컸다. 폐병 환자가 있는 집에서는 돼지 잡는 곳을 찾아가 비계를 얻어다 김치를 넣고 볶아 먹였다. 폐병은 전염이라 여겨 한 사람이 걸리면 온 가족이 다 걸린다고 믿었다. 느글느글한 돼지비계를 사러 가면 헐값에 주거나 덤으로 한 뭉치 더 얹어주기도 했다. 결핍과 인심이 함께 있던 시대였다.
이웃의 결핍은 곧 나의 결핍이었다. 사람들은 가진 것이 없어도 조금씩 나눴다. 양식이 부족해 양조장에서는 술찌꺼기를, 두부공장에서는 두부를 만들고 남은 콩비지를 얻어다 먹었다. 손발이 꼬질꼬질한 아이들은 하얀 국수를 빨래처럼 널어 말려두면, 국수가 바삭바삭해질 즈음 주인이 한눈파는 사이 국수 사이로 들어가 한 가닥씩 뜯어먹었다. 쫓아내며 “이놈의 자식들, 저리 안 가” 하고 소리치면, 아이들은 “와아아” 소리를 내며 달아났다. 그 소리가 한낮 골목에 퍼졌다.
부잣집 여자아이들은 고등학교까지 보냈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은 버스 차장을 시켰다. 동상으로 터진 손으로 모은 동전을 들고 따뜻한 방에서 뻥튀기를 먹는 부모 같지 않은 엄마들도 있었다. 자식을 팔아 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머릿결이 좋은 처녀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팔기도 했다. 어느 집이든 딸이 희생양이 돼야 했다.
늙은 버스기사와 한 대뿐인 버스의 어린 차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깊은 산골까지 막차로 들어갔다가, 그곳 방 한 칸에서 자고 첫차로 나오는 일이 반복됐다. 그렇게 지내다 임신으로 이어지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 당시 임신은 여자에게 족쇄였다. 낙태를 할 수는 있었지만 시기를 놓치면 선택지는 사라졌다. 그렇게 되면 버스기사 집 문간방에서 본처와 함께 살기도 했다.
새벽이면 두부장수의 외침이 잠을 깨웠고, 낮에는 제사공장 기계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제사공장은 비단실을 뽑는 공장이었다. 뽕잎으로 누에를 길러 누에고치가 되면, 안의 번데기는 골라내고 하얀 고치에서 실을 뽑아 기계에 감았다. 비단실이 만들어졌고, 번데기는 필요 없어진 물건이라 헐값에 팔렸다.
저녁이면 번데기를 사러 동네 아낙들이 양푼을 들고 모였다. 가득 받아온 번데기를 석유곤로나 솥에 넣고 들기름과 소금을 넣어 볶았다. 닳아빠진 놋수저를 들고 아이들은 얼굴을 그릇에 처박은 채 씹지도 않고 삼켰다. 그 시절 유일한 단백질이었다.
제사공장에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아가씨들이 기계 앞에 섰다. 싼 품삯이었다. 부드러운 비단에 형형색색 물을 입히면, 선녀 옷이 될 것 같은 비단천이 둥근 기계에 감기며 마술처럼 쏟아졌다. 미국이나 일본으로 수출되는 원사와 비단이었다. 공장 밖으로는 따뜻한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공정에서 나온 물이었다. 뜨거운 물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아낙네들은 바가지와 양동이를 들고 나와 그 물을 퍼 갔다. 도랑가에서 오간 이야기는 대부분 마을 소문이었다. 그곳에서 대호가 기옥이와 서울에서 살림을 차리고 아들을 낳았다는 얘기가 돌았다. 사실 대호는 성규네 머슴이었다. 술집에서 일하던 기생 기옥이와 도망치며, 주인집의 값나가는 패물을 훔쳐간 적이 있었다.
성규는 분노에 차 서울로 수소문했지만, 넓은 서울에서 그들을 찾기는 어려웠다. 성규의 분노는 단지 배신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기 집안에, 아니 자기 자식에게 내려진 재앙에 대한 분노였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성규네는 농사와 과수원을 했고, 장사도 크게 벌였다. 전국 각지에서 장날마다 올라오는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았다. 일본산, 미국산, 만주에서 온 녹용 같은 귀한 물건들도 성규네로 모였다. 도매상 노릇을 한 셈이었다. 저녁이면 지폐를 다발로 묶어 금고에 차곡차곡 넣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로 도망갔던 대호가 기옥이와 함께 성규 앞에 나타났다. 아이까지 셋 식구였다. 대호는 무릎을 꿇고 빌었다.
“도련님, 제가 마님 패물을 훔쳐 달아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십 년 넘게 이 집에서 일했으니 새경만 주시면 방 하나 얻어 살아보겠습니다. 서울살이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대호는 이제 노비가 아니라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계가 된 시대임을 은근히 내세웠다. 성규는 분을 참지 못하고 재떨이를 집어 던졌다. 빗맞아 대호의 머리에서 피가 조금 났다. 성규는 호통쳤다.
“네가 어떻게 우리 집을 배신하고 도망가느냐. 어머니도 너를 그렇게 챙겼는데!”
무엇보다 성규를 미치게 한 것은 대호의 아들이었다. 너무도 멀쩡했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모두 정상이었다.
‘제 따위가 저런 아이의 아비가 되다니. 내 아이는 평생 장애를 안고 사는데….’
성규는 대호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태도를 바꿨다.
“그래도 돌아와 반성하니 기특하구나. 내일 새경을 준비해 줄 테니, 저녁에 집 뒷산으로 나오너라. 아까는 내가 화가 나 역정을 냈다.”
대호는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아닙니다요, 도련님. 화내실 만합니다요. 제가 백번 잘못했습니다.”
대호는 아이와 기옥이를 데리고 성규네 집을 나섰다. 그 무렵 머슴들 사이에서는 새경을 받고 독립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다음 날 저녁, 성규는 대호와 약속한 장소로 나갔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보다 대호가 더 행복해지는 일만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