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규 어머니의 죽음은 처참했다. 매독을 몇십 년 앓은 사람은 신경계부터 무너져 뼈와 살에 궤양이 생기고 극심한 통증에 시달린다. 결국 모르핀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기 시작했다.

당연히 한쪽 눈알은 궤양으로 제자리를 잡지 못했고, 급기야 분리돼 안대를 하고 있었다. 영규는 한평생 아버지의 외도로 만신창이가 된 채 죽음을 맞이하는 어머니가 너무 불쌍해 견딜 수가 없었다. 일본 의사를 불러 모르핀을 맞게 하고, 밤중에 통증으로 울부짖을 때면 곁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아 주었다.

영규 어머니는 서서히 죽어갔다. 궤양으로 살결의 색깔도 변했고, 한 달여 동안 미친 사람처럼 통증을 호소하다 실신을 반복하다 죽어간 것이다.
정승네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하고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없다는 옛말이 틀림없듯, 혹시나 매독균에 옮을까 문상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만재할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도 미어터지게 문상객이 왔을 터이지만, 좋은 시절은 지나고 집안은 이미 무너지는 담장이 돼 있었다. 그중에 속으로 기뻐하는 사람은 성규네 부부였다. 성규는 어머니가 죽기 전에 성혼을 했고, 영규 어머니는 이혼한 큰아들 영규에게 재산을 다 주지 않고 자신을 모실 거라 여겨 왔던 성규네에게 재산을 온전히 남겨주었다. 막내딸 미자는 그 지역에서 잘살고 인품 좋은 집 의사 아들과 결혼해 있었다.

장의사는 시신의 구멍마다 고름이 나오자 무명솜을 뭉쳐 다부지게 틀어막고 얼굴도 단단히 염을 했다. 시신에 대한 절차가 끝나자 상주들은 상여가 나갈 준비를 했다.
새벽부터 분주했던 집 마당에 드디어 상여가 모습을 드러내자, 기다리던 사람들의 낮은 흐느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영규 어머니는 가문 좋은 부잣집 막내딸로 시집올 때 몸종 두 명을 데리고 왔다. 그 몸종들은 아직도 살아 있어, 자신들이 아씨로 모셨던 영규 어머니가 먼저 죽은 것이 더욱 슬펐다.

나무로 엮어 만든 상여 위에는 색색의 종이꽃과 조화가 장식돼 있었지만, 그 화려함은 되레 삶의 허무함을 더욱 부각하는 듯했다. 꼭두 인형들의 익살스러운 표정조차 애달프게만 느껴졌다. 삼베옷을 입은 상여꾼들이 상여를 어깨에 메고 휘청일 때마다, 망자의 무게뿐 아니라 남은 이들의 삶의 고단함까지 짊어진 듯했다. 영규 어머니의 슬픈 삶이 겹쳐져 보였다.

선두에서는 명정을 든 사람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검은 글씨로 쓰인 망자의 이름이 바람에 나부낄 때마다, 망자가 정말 이승을 떠나는구나 하는 현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징과 꽹과리가 느리고 구성지게 울려 퍼지며 “어화 넘치 어화 넘 차” 하는 상여 소리가 처량하게 마을 길을 따라 이어졌다. 그 소리는 산과 들에 부딪혀 메아리치며 듣는 이의 심금을 찢어 놓는 듯했다.

흰 상복을 입은 유족들은 오열하며 상여 뒤를 따랐다. 옆 마을에서 온 조문객들과 동네 사람들도 말없이 고개를 떨군 채 그 행렬에 동참했다. 이웃의 죽음은 모두의 슬픔이었고, 또 언젠가 자신에게도 찾아올 미래였기에 더욱 애통한 마음이었다.

흙먼지 이는 비좁은 길을 따라 상여는 느릿느릿 멀어져 갔다. 가는 길에 영규 어머니의 친정이 있었다. 그곳에서 상여가 잠시 멈췄고, 상여꾼들도 상여가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틈을 타 친정과 망자가 이별할 시간을 주었다.

그때 한 줄기 빛이 내리쬐었고, 그 빛 아래 마지막으로 보인 상여의 모습은 사라지는 햇살처럼 아스라이 슬펐다. 뼈아픈 이별의 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가 너무나도 선명했다. 영규의 눈에는 어머니가 그 빛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머니, 그곳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편안하시길….”

속으로 가만히 속삭였다.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의 이혼과도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죄책감이 밀려왔고,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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