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규는 어릴 때부터 남을 괴롭혔다. 재력과 신분이 남들보다 위에 있다고 여긴 탓에 겁날 것이 없었다. 동네를 떠돌던 넝마주이 아이들을 부하처럼 부리며 여자아이들까지 괴롭혔다.

전쟁 통에 부모를 잃거나 가난에 시달리며 조부모 밑에서 자라던 지체장애 아이들도 거지로 떠돌았다. 성규는 먹을 것을 미끼로 그 아이들을 꾀어 냇가 너머 빈 동굴 같은 곳으로 데려갔다. 넝마주이 아이들에게 망을 보게 한 뒤 겁탈을 일삼았다.

어느 날 길에서 예쁘장한 여자아이의 가슴을 만졌다가 그 아이가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이미 달아난 성규 일당을 초짜 경찰이 붙잡아 왔지만, 성규가 이 고장의 유지라는 사실을 아는 경찰은 오히려 그 초짜를 나무라며 성규 편을 들었다. 여자아이는 억울함을 삼킨 채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시대는 여전히 남아존중 사상이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성규의 먼 친척인 아주머니는 딸만 다섯을 낳고, 아들을 보기 위해 여섯째 아이를 임신했다. 아이를 낳을 당시 남편은 집에 없었다. 산파는 해산을 돕고 뒤처리를 마친 뒤 돌아갔다.

여섯째도 딸이었다. 산모는 죽고 싶었다. 추운 방에서 산모는 핏덩이를 윗목에 놓고 솜이불을 덮어두었다. 하루가 지나 아이는 숨이 끊어져 있었다. 산모는 몰래 아이를 산에 묻고, 남편에게는 사산이었다고 말했다. 딸이었다는 말만 전했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을 낳기 위해 아들을 많이 둔 과부에게 들어가 살았고, 아내에게 아들을 얻었다고 전했다. 아내는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아이를 벗겨 보았고, 그 아이 역시 딸이었다.

어디서나 아들을 낳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지만, 영규네는 기형아만큼은 나오지 않기를 하늘에 빌었다.

성규는 스무 살을 넘기자 이웃 마을에서 혼처가 들어왔다.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였기에 매파에게 후하게 수고비를 주며 좋은 혼처를 잡으려 했다. 다행히 혼사는 성사되었다.

성규의 아내는 공부도 어느 정도 했고 겉으로는 조신했지만 속으로는 다른 욕심이 많았다. 이 집안에 퍼져 있던 매독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성규는 딸 하나, 아들 둘을 두었다. 큰딸은 한쪽 다리가 짧았지만 당시 의술로는 고칠 수 없었다. 다만 하루 한 번, 짧아진 다리를 억지로 잡아당겨 맞추는 치료를 해야 했다.

아침마다 멱 따는 듯한 아이 울음이 담장을 넘어 마을을 덮었다. 한 시간 가까이 땀을 흘리며 다리를 당겨야 했고, 고통은 견디기 힘들었다.

둘째 아들은 다행히 큰 탈 없이 자랐다. 그러나 막내 셋째 아들은 발가락이 세 개인 채로 태어났다. 선천적인 기형이었다.

매독에 걸린 사람의 후손이 기형아로 태어날 확률이 약 40퍼센트라는 말이 떠돌았다. 성규의 아내는 죽고 싶었다. 아이와 무인도로 가 둘이서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함께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오갔다. 하루에도 수없이 생각이 뒤엉켜 머리가 하얘졌고, 결국 정신과 약을 먹게 되었다.

아이를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채 병원만 전전하다가 발가락을 만들어 붙이는 수술을 알아보았지만, 신생아에게는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동네 사람들은 수군거렸고, 머슴과 식모들조차 쉬쉬하며 입을 다물었지만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성규는 괴로웠다.
‘내가 겁탈했던 여자들, 잔인하게 괴롭혔던 아이들에 대한 천벌일까.’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가장 원망스러운 것은 아버지였다. 아내에게 미안했고,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를 고쳐 주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모든 재산을 팔아서라도 아들을 정상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한 성규는 큰 병원들을 수소문해 진단을 받았지만, 선천적 기형은 약이나 주사로 고칠 수 없다는 결론뿐이었다. 발가락을 만들어 붙이는 수술도 성공률은 50퍼센트에 불과했고, 평생 걷는 연습을 반복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성규의 어머니는 큰손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작은손자가 기형으로 태어난 모습을 본 뒤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떠난 지 두 해가 지난 봄, 무덤가에는 유난히 할미꽃이 처량하게 많이 피어 있었다. 성규는 어머니 묘 앞에 아침부터 밤까지 무릎을 꿇고 앉아 할미꽃만 바라보았다. 봄바람은 몹시도 차갑고 매서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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