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의 힘은 대단했다. 기세등등하던 이승만이 드디어 하야하였다.
수진과 영규는 이제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남산의 녹음이 짙어질수록 두사람의 사랑은 깊어져 갔다.
그런 와중에 수진이가 덜컥 임신을 하였다.
이화여대는 학기 중 결혼하면 졸업하기 힘든 규칙이 있었다. 바로 금혼 학칙이었다.
실제로 제적을 당한 학생도 있었다. 수진이가 배가 부른 상태로 학교를 다닌 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었다. 이 제도는 2003년 폐지되었다.
할 수 없이 둘은 각자 집에 알렸고, 양가 부모는 동대문의 황금 다방에서 서로 마주 하게 되었다.
양반집 마나님인 영규어머니는 한복을 차려입었다. 독기서린 눈으로, 짧은 치마를 입고 나온 며느리감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수진어머니는 북한에서 화전민으로 떠돌던 사람이었다. 전쟁통에 남한으로 넘어와 포목점에서 심부름을 하며 숙식을 해결했다.
포목을 팔면서 자로 잴때 눈속임을 써서 빼돌리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같은 일을 하는 남편을 만났다. 수진 아버지도 배운 것이 없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꽤 규모가 큰 포목점을 하면서 돈푼깨나 만져 배가 나온 수진 아버지, 서울에서 유행하는 짙은 화장을 한채 양장을 입고 거들먹거리는 수진 엄마였다.
수진이의 배가 불러지기 전에 혼사를 치르고 싶었지만 시어머니가 만만치 않았다.
‘내 자식이 누구라고 꼬리를 치다니 여우 같은 년이’ 라고 영규 어머니는 속으로 생각했다.
수진이를 어렵게 이화여대를 보낸 수진네 부모는 딸의 급작스런 임신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로를 보며 다방에서 쌍화차를 시켰으나 아무도 마시지 않았다. 두 남녀는 애가 닳게 자기 부모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수진엄마가 먼저 퉁명스럽게 말을 꺼냈다.
“남의 딸을 망쳐놓고 학교도 못 다니게 되었으니 어찌하실 겁니까?
영규어머니도 되받아쳤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우리 애는 서울대생입니다. 저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 꼬리를 치고 다니니 사달이 날 수밖에요. 두 마나님의 언성은 높아지고 두시람은 어쩔 줄 몰라하다 각자 자신의 어머니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영규네 마나님은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일자 무식쟁이 여편네가 어디 감히 우리 가문에 천한 것을 들이게 하다니.
성규는 형이 저지른 일이 어머니의 화를 돋우는 것이 속으로 좋았다. 주변에 소문이 자자한 수재인 형이 여대생을 임신시키다니 어머니가 하늘 같이 떠받들던 형이었다. 자신은 서울대 갈 실력이 못되었다. 그저 아버지가 남긴 재산이 형에게 다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두 안사돈끼리 물고 뜯고 해도 봄은 지나고 있었고 수진이의 배는 조금씩 불러왔다.
수진이 엄마는 딸을 생각해서 한발 물러섰다. 영규네 친척들의 한복감을 30벌 이상 끊어주었고 예단비도 넉넉하게 보냈다. 오로지 독해보이는 시어머니를 달래기 위해서였다.
영규네도 서울에 신혼집을 마련하고 식모를 하나 딸려 보냈다. 결혼식을 서울에서 한번 본가에서 한 번 두 번 치렀다. 시골에서는 꽃같이 예쁜 서울 처자를 구경하러 장날 서커스 구경하듯 모여들었다. 영규어머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음식을 베풀었고 주변에 거지들도 불러 배불리 먹여주었다. 이참에 아들이 가정을 가지면서 민주화투쟁이니 뭐니 하는 것은 발을 빼기를 바랐다.
수진이네도 말로는 딸을 뻿어간 날강도 같은 놈이라 생각하다가도 서울대생에 양반 가문의 맏며느리 자리니 학업이 중단되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원래 수진이야 학업에는 관심도 없고 바람기 많은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늘 남자가 줄을 잇고 술 담배와 외박이 잦은 딸이라 차라리 결혼을 하면 나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본가의 결혼식은 대단했다. 영규엄마가 신경쓴 것은 소를 한마리 잡는 것이었다.
우시장에서 소를 한 마리 사고 살찐 검은 돼지 두 마리를 잡았다.
끓는 물에 삶아 털을 모조리 벗기고 가마솥에 이틀간 고아 뼈와 살을 분리했다. 양은 그릇 여러 개에 살을 담아 무명천을 덮고 큰 돌을 덮어 짓누르면 오돌오돌한 편육으로 되는 것이었다. 이 과정은 복잡하지만 잔치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이었다. 주인이 보지 않을 때 치마폭에 슬쩍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다.
온 동네에 잔치요리를 잘한다는 여자들이 모두 영규네로 모여 제각기 자신이 맡은 일을 하였다. 그러면 자신만 먹는 것이 아니라 집에 아파서 누워 있는 노인들에게도 싸다 줄 수 있었다. 어린것들은 올망졸망 일하는 엄마의 치마폭을 잡고 전이며 적이며 못생긴 것들을 얻어먹었다.
영규 어머니는 큰아들의 결혼식을 아주 크게 하고 싶었다. 영감이 없는 집이라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무리 부자라도 소 한 마리를 잡는 집은 거의 없었다.
그 당시 소는 소중한 재산이기 때문이었다.
새로 차린 신혼집에서 수진과 영규의 달콤한 신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