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규는 침착하게 두 사람 앞으로 다가섰다. 틀림없는 수진이었다. 짙은 화장에 향수 냄새가 풍겨왔다. 영규를 알아보고 얼어붙은 수진을 본 조각남은 직감했다. 이 남자가 수진의 남편임을…
조각남이 잽싸게 몸을 돌려 도망가려는 순간 영규의 주먹이 먼저 날아갔다. 조각남은 “어쿠쿠” 하며 나동그라졌다. 벌써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수진은 남편을 말릴 수도, 조각남을 일으킬 수도 없는 난국에 직면해 잠시 당황하다가 얼른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살기 어린 영규의 눈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 보는 눈빛이었다. 혹시 자신을 마구 때리는 건 아닐까, 수진은 안방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아는 동생’이라고 해야 하나,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며 밖에서의 난투극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여러모로 남편 입장도 난처해질 것 같아 생각을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밖에서는 조각남이 영규 몸 아래 깔려 얼굴을 여러 대 맞고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라며 무조건 빌고 있었다. 잠시 매가 멈춘 틈을 타 그는 재빨리 어둠 속으로 도망가 버렸다.
영규가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조각남의 모습은 전형적인 제비족이었다. 너무 창피하기도 하고, 수진이와 걸린 문제라 함부로 소문낼 일도 아니었다.

사실 수진이 행실이 나쁘다는 것은 짐작했다. 아이 셋을 기르며 자신을 헌신하는 성향은 아니었다. 가끔 집에 와 보면 금순이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밤늦도록 집에 오지 않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설마설마하고 있었는데, 친구에게 들킨 일을 생각하니 씁쓸했다.

누구를 위해 돈을 벌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한심했다. 예전에 한찬구가 “얼굴 예쁘고 몸매 예쁜 여자랑 6개월 살아보니 말도 안 통하고 성격도 안 맞아 너무 후회했다. 성품 보고 결혼하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큰딸 인애는 피부 발진이 없으나 둘째 미애는 이미 매독균 발진이 시작되었고, 사타구니나 팔다리 접히는 부분은 진물이 꾸덕했다.
규만이는 비염을 달고 살았고 코딱지가 고름처럼 흘러나와 인중은 늘 덕지덕지 콧물로 더럽혀져 있었다. 매독 3대째의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수진은 아이들을 병원에 잘 데리고 가지 않았다. 사실 어렴풋이 시댁 쪽에 매독이 내려오고 시어머니도 의안을 하고, 남편도 백납병이었다는 말을 풍문으로 들은 바 있었다.

제대로 피검사를 해보지 않았으니 시댁에 사기 결혼이라 할 수도 없지만, 병원에 가면 확인될까 봐 무서웠다.
수진 자신도 매독이 옮아 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밖으로 나돌아다녔는지도 몰랐다.
남편과의 잠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영규는 조각남을 그대로 보내주었다. 더 이상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와 영규는 죽일 듯이 수진을 쏘아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영규의 손이 수진의 뺨으로 날아갔다.
수진은 옆으로 쓰러졌다.

“네가 사람이냐? 어린 새끼들 두고 할 짓이냐고?”

“규만 아빠, 잘못했어요. 나도 당신이 늘 밖에 있어서 외로웠어요.”
수진은 흐느끼며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외롭다고 외간사내랑 그 짓을 하고 다녀? 애 엄마가?”
영규는 피가 솟구치는 마음으로 소리를 죽여가며 다그쳤다.
생각 같아서는 두 연놈을 찢어 죽이고 싶었다.

“우리 결혼할 때 두 집안에서 반대했는데, 힘들게 결혼식 한 거 기억 안 나? 벌써 이렇게 나를 배신하고, 너랑 어떻게 살 수 있겠니?”

수진은 울며불며 사정했지만,
영규는 이혼을 결심했다.

인애는 엄마를 따라 미국으로 갔다.
미애와 규만이는 아버지가 건축일을 하여 돌볼 수 없어 할머니 집에서 살게 되었다.
본가 마을에서는 “규만이 엄마가 그럴 줄 알았다”고 혀를 쯧쯧 찼다.
시어머니 생일에 와서 매니큐어 손질만 하고 상도 차리지 않는 것을 온 마을 사람들이 보아 어떤 생활을 하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춤바람이 나면 “규만 엄마처럼 된다”고 뜯어말렸다.
그러면 며느리들이 이혼당하지 않으려고 들키지 않기 위해 장바구니에 카바레 옷을 숨겨 신중하게 춤을 추러 다니곤 했다.

영규는 얼마 안 있어 재혼해 단란한 가정을 다시 꾸렸다. 이번에는 착하고 순종적인 아내를 얻어 아들 둘을 낳아 잘 살게 되었다.
할머니 집으로 온 미애와 규만이는 작은아빠와 작은엄마의 보이지 않는 구박 속에 천덕꾸러기가 되어 갔다.

시골집에서는 다른 집에 놀러 갔다가 아이들이 밤이 되면 그 집에서 재워주곤 했는데, 미애가 자고 일어나면 이부자리에 고름이 적셔져 어느 집이든 미애와 규만이를 피했다.
할머니까지 이혼한 며느리가 미워 남겨진 손자·손녀를 구박하니 아이들이 갈 곳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이 집 저 집 돌며 도둑질도 하게 되었다.

비정한 엄마는 끝내 두 아이를 돌보지 않았고 만나지도 않았다.
미애는 사춘기 때 가출했다가, 할머니 장례식장에 미혼모가 되어 잠깐 나타났다.
규만이는 어느 날 새벽 거리를 떠돌다 트럭에 받혀 즉사했다.

엄마가 버린 아이들은 우주도 버리는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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