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규가 이틀간 보이지 않자 미자는 처음으로 그의 부재를 알아차리고 어머니에게 알렸다.
"어머니, 동규가 보이지 않아요. 집을 나간 것 같아요."
마님은 무심하게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
"저 애가 어디 갈 곳이 있겠어? 형이 무서워 헤매는 것뿐이야. 넌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라. 여자도 출세할 수 있는 시대다. 나처럼 살지 말아야지."
사실 동규는 서커스단을 따라 갔다.
그 당시 서커스단은 일본에서 들어와 동춘 서커스단을 비롯 국내 곳곳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며 한국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동규는 천안 장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공연하러 온 서커스단을 생전 처음 보게 되었다.
운 좋게도 표를 건네는 사람이 동규를 귀엽게 여겨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동규에게 모든 것들은 정말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거대한 코끼리가 공을 코로 말아 콧등 위로 던지는 장면과, 화려한 분장과 의상을 한 여성들이 공중에서 우아하게 회전하며 부드럽게 착지하는 모습(아크로바트)에 그의 눈길은 단번에 빼앗겼다.
서커스 공연이 끝난 후 동규는 집으로 가지 않고 서커스단 장막 뒤에 숨어 그들이 정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서커스단 여성들 중에 죽은 묘향이와 너무나 닮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묘향이는 동양적인 얼굴이었지만 옆모습으로 보면 높은 콧대로 인해 이국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동규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철철흘리며 "엄마 엄마" 하고 불렀다. 아무도 듣지 못하였다. 자신을 어루만져주던 어여쁜 엄마가 다시 돌아올 것 같았다. 지옥같은 본가는 가고 싶지 않았다.
서른 살 정도의 서커스단 여인을 바라보며 동규가 마음속 엄마의 추억을 그리고 있을 때 해는 졌다.
서커스단 전체 인원은 스무 명에서 서른 명 사이였는데, 그중에서도 중국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한 가지 서커스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습시켜 유연성을 길러내고, 이를 돈을 버는 하나의 조직적인 시스템으로 인식하여 대대로 도제 방식을 따르는 경향이 강했다.
공연이 끝나자 코끼리 줄을 풀고 먹이를 주었지만, 코끼리는 여전히 20미터의 좁은 공간 안에서만 빙빙 돌 뿐,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평생 그 제한된 거리에서만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도 어릴 때부터 폭력에 노출되거나 특정 사상으로 세뇌되면 코끼리와 같은 심리적 구속을 겪게 된다.
창살은 열렸지만 내면의 문은 여전히 닫혀 있는 그 상태, 바로 훈련과 학습의 부정적인 결과인 것이다.
과거에는 군대에서 구타가 생활화되어 있어 오히려 빨리 맞고 나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시대의 비극은 단지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동규는 그들의 트럭에 숨어 탔다. 묘향이와 닮은 한 여인에게서 엄마의 향기를 느끼며 본가에서 벌어지는 이복형의 만행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서커스단을 따라가면 먹을 것은 준다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눈물에 땀이 절어 꼬질꼬질해진 동규는 들킬까 봐 두려워 쪼그리고 앉았다.
열살 동규의 마음은 두렵기도 하고 엄마를 찾은 듯한 느낌에 날아갈 듯 가벼웠다. 어디든 떠나면 기쁠 것 같았다. 그 여인에게는 다가가지 못했다.
서커스단 트럭은 밤에 움직였기에 그가 숨어들기 쉬웠고, 심지어 어린 단원들은 낯선 동규가 신기한 듯 먹을 것까지 주었다.
하지만 날이 밝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단원들을 점검하던 중, 귀퉁이에서 잠든 동규를 발견한 단장은 깜짝 놀랐다.
"야, 너는 누구야? 언제부터 우리 차를 타고 있었던 거니?"
동규는 당황했다. "아저씨, 우리 엄마는 돌아가셨고요. 우리 엄마를 닮은 분이 여기 계셔서 그냥 따라왔어요."
단장이 물었다. "그래? 그럼 네 집은 어디니?" 동규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천안이라고 대답했다.
단장은 "너를 네 집으로 보내줄 테니 다시는 서커스단을 따라오지 마라."라고 말하면서도, 어린 동규를 측은히 여겨 아침 식사를 주었다.
다음날 동규는 서커스단장이 천안으로 가라며 약간의 돈을 주고 돌려보냈다. 동규는 눈물을 그렁거리며 발길을 돌렸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