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제천단양뉴스의 [걷기 좋은길74]코너에 ‘뚜께 바위’ 란 제목의 글이 실렸다.
남편은 ‘뚜께 바위’라는 말에 30년 전의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는지 갑자기 나를 보고 “그 때는 속도 어지간히 썩이더니...”하는 게 아닌가.
아니, 내가 뭘!

하긴, 그때만 해도 내 나이 40대 중반. 
남편의 속을 썩일 정도로 인기가 많은 내 인생의 황금기이긴 했다. 
 
때는 바야흐로, 1990년대. 
충청남도 서산에 잠시 살다가 고향인 영주로 돌아와 아파트로 이사를 했는데, 바로 아래 층에 한때 남편과 근무했던 여직원이 살고 있었다. 

7년 가량 나이 차는 있었지만, 금방 “형님! 형님!”하는 그 여직원 덕분에 1층에서 5층까지 사는 모든 사람들과 친해졌다.
 
당시 나는 오동통 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때는 아침 먹고 설거지 하면서, 언제 점심때가 되지 생각할 만큼 식욕이 왕성한 때였다. 

어느날 서울에 사는 40년 지기 짝꿍 친구가 오더니 “니가 사람이나 돼지지"
충격을 좀 받아야 한다면서 내 자존심을 있는 데로 긁고 갔다. 
나도 감정의 동물인데 그 영향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그 이후, 새벽마다 집 앞 뚜께바위에 오르면서 살 빼기 작전에 돌입했다. 
당시에 우리는 뚜께 바위를, 뚜껑을 덮어 놓은 것 같이 생겨서 뚜껑바위라고 불렀었다. (이번에 신문 기사를 보고 뚜께 바위라는 걸 알았다.)
 
어쨌든 매일매일 뚜께바위에 올라 배드민턴도 열심히 치고 식이요법까지 진행하며 다이어트에 좋다는 건 총동원했다. 
피나는 노력의 대가는 굉장했다.
돼지에서 꽃사슴으로 변신해, 내 인생이 꽃길로 변했다.   
 
그때부터 내가 여자로 보이는지 산에 올라가노라면 백바지를 깔끔하게 입은 교사 스타일의 중년남자가, 문학 얘기를 하면서 말을 걸어오질 않나, 또 아파트 아래 단독주택에 사는 인상이 제비 같이 생긴 남자는 죽령폭포가 좋다면서 같이 놀러가자고 하지를 않나. 

시내 갈 거면 데려다 줄테니, 차에 타라고 하질 않나. (한 번도 탄 적은 없다) 
그리고 서예선생님이라면서 서예를 배우러 오라면서 밥 한번 먹자는 할아버지까지... 

꽃사슴이 되니 내가 꼬리를 흔들고 다닌 적도 없는데 남자들이 그리 대시를 한다.
배드민턴을 치다보니 자연스럽게 산에 오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게 되어 그런가보다.
 
나는 미동도 안하는데 괜히 남편은 안달을 한다. 그만한 외모에 뭐가 자신 없다고 눈에 불을 켜고 신경을 쓰는지...암튼 내가 중년에 이렇게 인기가 있어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심지어 당시 교회에서 초등부 고등부 교사를 할 때도 인기가 좋았다. 하물며 아파트 아래층에 남편과 함께 근무했던 여직원의 질투도 장난이 아니었다. 위층 아지매와 조금 더 친한 것 같으면 질투가 나서 나를 피곤하게 했다.

위층 아지매는 내가 남자도 아닌데 “형님 하루라도 안보면 상사병이 날 것 같아요.” 무슨 마력이 있는지 형님이 너무 좋아 죽겠단다. 원래도 가는 곳마다 인기는 있었지만 이렇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인기를 얻은 건 살다 살다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남편도 나도 서로에게 비밀이 없었다. 남편의 질투심에 불을 지피는 줄도 모르고, 소소한 일까지 다 이야기 하다 보니, 어느 날 사달이 났다. 

하루는 휘영청 달 밝은 밤에 아파트 놀이터에서 남편과 시소를 타고 있는데, 산에서 만났던 백바지의 남자가 우리를 보고 있기에 인사를 했더니, "참 보기 좋네요"한다.
그것이 의심의 씨앗이었다.

직장 사택에서 (아랫동네) 사는 사람이 왜 우리 아파트까지 왔냐는 거다. 내가 어찌 알아 그 속내를...
 

한동안 의심으로 점철된 날들, 심사가 너무 괴로워 뚜께 바위 올라가는 것을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만 두고 근신했다
남편은 백바지 하고 무슨 일이 있었냐면서 아직도 가끔씩 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
오로지 일편단심 민들레인 나를 의심하면 천벌을 받고도 남지...
 
잠시 그것도 추억이라고 뒤돌아 보니 할매가 된 지금과는 아주 다른 그때가 나에게는 여자로서 황금기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으로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천단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