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봄날이었다. 봄은 왔지만 직장생활이 너무 권태로웠다. 가장이라면 그런 나약한 감정을 스스로 깨부셔야 했는데 나는누군가에게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맞벌이를 하던 집사람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푸념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일을 그만둘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그저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공유하며 위로받고 싶었다. 봉급생활자라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더러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나의 하소연을 듣자마자 집사람은 다음날 즉시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내가 먼저 사표를 내지 못하도록 선수를 친 것이다. 그리고 단오하게 선언 했다. 나더러 회사를 계속 다니든지 모두 같이 길바닥에 나앉든지 알아서 하라는 거다. 나로서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지만 온 몸으로 가족을 지키기 위한 아내의 엄청난 결단에 백기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믿어야할 사람은 나 자신일뿐 가깝다고 누군가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막연한 감정은 너무 위험하다는 거였다.

늘 그렇듯 올해도 봄이 왔다. 그러나 올 봄은 온기를 느끼기 어려운 곳들이 유난히 많다. 우크라이나도 그렇고 베네수엘라도 그렇고 이란 역시 마찬가지다. 전쟁광들이 날뛰는 세상에 무슨 온기가 있겠나. 국내 경기도 비슷하다. 주식시장은 호황인 것 같지만 상업지역을 걷다 보면 다섯 집 건너 한 집씩 이가 빠진 것처럼 공실이 만연되어 있다. 계절은 봄이지만 살림살이가 여전히 겨울인 바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하소연 하겠나. 부부싸움이든 나라살림이든 약세를 보이는 순간 먹히는 세상이다. 작은 나무는 큰 나무의 그늘에서 자란다는 말은 얼마나 웃기는 모순인가. 역사적으로 강자는 끝없이 약자를 굴복시킬뿐 절대 지켜주지 않는다. 이 봄 먹힌 나라, 먹힌 사람들에게 일러주고 싶은 말이 있다. 막연하게 좋아질 거라며 봄을 기다리지 말기를. 누구에게 푸념하지도 말고 반드시 강해지기를. 그래서 스스로 봄을 열기를. 기꺼이 차지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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