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손주 자랑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분들은 대부분 핸드폰으로 아기 사진을 보여주며 “예쁘지요?”하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도 “예쁘네요”하고 맞장구를 쳤다. 선천적으로 아기를 좋아하지 않아 공감이 가지는 않았지만 그렇더라도 인사치레는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마다 상대는 진짜로 칭찬하는지 알고 쉬지 않고 계속 다른 사진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거절하자니 미안하고 맞장구를 쳐주자니 겸연쩍은 일상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기를 모든 동물은 새끼들이 예쁘지 않나. 사람도 동물인데 애들이 뭐 다 예쁜 거지. 나중에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속으로 다짐을 했다.
그런 내게 얼마 전 손녀가 태어났다. 출산하는 날까지 딸의 산통은 걱정되었지만 태어날 아기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었다. 내 나이쯤 되면 누구라도 찾아오는 계절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식물은 씨를 남기고 가고 사람은 유전자를 남기고 가는 것. 오히려 내가 늙어간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이상하게도 아이가 궁금하기 시작했다. 누구를 닮았을까. 어떤 날은 딸을 닮은 것도 같고 또 어떤 날은 사위를 닮은 것 같았다. 자고 있는 모습이 외탁한 것 같아 흐뭇하기도 하고 웃는 모습이 친탁한 것 같아 아쉽기도 했다. 지금쯤은 또 자고 있을까. 아니면 모유를 먹고 있을까. 저녁에 자리를 펴고 누워도 처음 당구를 배웠을 때 천정에서 당구공이 오락가락했던 것처럼 해맑은 손녀 얼굴이 왔다 갔다 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내게 가장 큰 낙이라면 아무래도 술이었던 것 같은데 비로소 더 큰 낙이 생겼나 보다. 언제부터인가 돈에 대한 욕심도 좀 사그라져 일상이 덤덤했는데 살면서 이런 선물도 벅차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곰곰 되새겨 본다. 물 흐르듯 별 것 없는 삶이지만 각자의 삶에는 누구라도 굴곡이 있다. 가장 세찬 바람으로 민들레 홀씨가 최대한 멀리 퍼져나가길 염원하는 마음. 그 온 마음으로 내게 다가온 축복을 맘껏 누려야겠다. 지금까지 내게 손주 자랑하셨던 모든 분들에게 내 생각이 짧았음은 인정하고 사죄 드린다. 나도 이제 그들처럼 슬슬 손녀 자랑을 시작할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