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늦둥이 막내아들이 나와 함께 산다.
생김새도 성격도 나와는 전혀 다른 녀석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그를 나와 붕어빵이라고 한다.
녀석은 어릴적부터 나중에 크면 얼굴이 나같이 변할까봐 걱정이라 했는데 도대체 무슨 붕어빵이라는 것인지 조금 억울했다.
뭐,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인정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남들보다 조금 늦게 본 자식이라 누나나 형보다 더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 갈수록 생각이 자기중심적이라 한 걱정이었다.
그런 녀석이 중학교에 다닐때 학기말 성적표랍시고 받아왔는데 역사시험 성적이 25점이었다.
내 보기엔 객관식이므로 완벽하게 0점인데 녀석은 아는 문제만 맞고 찍은 문제는 다 틀려서 40점 정도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 끝에 한 가지 꾀를 냈다.
그나마 봐줄 만한 과학 성적을 빌미로 사탕발림을 한 것이다.
“우리 아들은 이과 머리야. 아무래도 과학자가 되려나보다”
“정말로 그럴까?”
“당연하지! 사람마다 발달된 뇌가 조금씩 다른데 넌 그쪽에 재능이 많은가봐”
“...”
회초리 대신 당근책을 폈더니 제 딴에는 듣기 좋았나보다.
그날 이후 과학 한 과목이라도 그런대로 괜찮은 성적을 받아왔다.
효과가 나타나니 욕심이 커져 한 발짝 더 나가기로 했다.
“과학 잘한다고 과학자가 되고 그림 잘 그린다고 화가가 되는 게 아니야”
“그럼요?”
“외국의 과학 책은 거의 영어던데 영어를 못하는 과학자는 없겠지?”
“영어는 못하고 과학만 잘하면 어떻게 되죠?”
“기계 수리공이나 자동차 정비 같은 것을 하지 않을까?
녀석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뭔가 되려는가 싶었다.
영어까지 재미를 붙이면 다음은 수학이라고 생각했다.
가슴 벅찬 기대가 물밀듯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영어성적이 오르기는커녕 느닷없이 녀석의 꿈이 과학자에서 카센터 사장으로 바뀐 것이다.
순간 김이 확 샜지만 뭘 어쩌겠나.
슬프더라도 내가 바뀌기로 했다.
붕어빵을 바꿀 수 없다면 붕어가 변해야 한다.
붕어가 원했던 영어대신 대학에서는 디자인 공부라도 뜻이 있다는 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의 붕어빵아, 붕어빵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떠냐.
너의 새해 목표중 하나라는 거 있잖아.
<효도하기>였던 것 같은데 그거 하나라도 꼭 지켜주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