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 있는 처가(妻家) 이웃에 1남 4녀를 둔 아비가 살고 있었다. 조그만 목욕탕을 운영하며 5남매를 키우던 사람인데 썩 여유로운 편은 아니었다. 워낙 변두리마을이고 사업규모가 영세해 빠듯하게 가업을 유지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목욕탕이 터한 땅의 절반정도가 도시계획에 의해 수용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안 그래도 업(業)을 접을 나이가 되었는데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려준 격이었다. 더욱이 보상금 규모가 무려 28억 원에 달했다. 주변에 월드컵 경기장이 지어지며 급격하게 땅값이 치솟은 덕이다. 계획에 없이 곳간이 넘치게 된 그는 넘치는 마음으로 재물을 덜어내야만 했다.

아비는 흩어져 살던 5남매를 모이게 했다. 넘치는 곳간을 그들과 정리할 생각이었다. 눈치 챈 자식들은 꿈에 부풀어 아비의 집을 찾았다. 가장 먼저 도착한 아들은 자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참에 사업을 크게 키우고 싶었다. 뒤따라 도착한 딸들은 모두 봉급생활자에게 시집을 가 살림이 궁색했기에 하나같이 집을 넓히고 싶었다. 2, 3억씩이라도 나누어주시면 감사히 받으리라 생각했다. 목적이 즐거운 자식들이 토해 내는 소리로 모처럼 집안이 시끌벅적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도란도란 창밖으로 흩어져 나오는 모습이 사람들은 부럽기만 했다.

그런데 아니다. 저녁상을 물리기도 전에 집안이 쑥대밭이 됐다. 아비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네 딸들이 앞을 다투어 아버지와 남동생을 공격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아비는 아들에게 25억 원이나 건네고 딸들에게는 각자 3천만 원씩만 배당한 것이다. 세상에! 이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업둥이 딸들도 아닌데 웬 조화란 말인가. 딸들이 분개하는 것은 제3자가 보기에도 당연했다. 차여진 곳간으로 인해 화목했던 한 가정의 우애가 곳간을 비우는 과정에서 그렇게 순식간에 깨지고 있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격론을 벌인 끝에 결국 아비가 수습하긴 했다. 그런데 수습하는 방법 또한 묘했다. 수용되지 않고 남아있는 목욕탕 부지의 절반은 공평하게 나눠줄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나오면 국물도 없다고 못 박은 것이다. 그야말로 협박에 가까운 당근책이었다. 네 딸들은 억울했지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받아들이는 방법 말고는 도리가 없었다.

아비는 이 모든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면 온 집안이 더 잘 살 것이라 믿었다. 공평하게 5억 원씩 나누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되면 모두가 그저 그런 처지가 되리라 생각했다. 차라리 사업을 하는 아들에게 25억 원을 몰아주면 아들은 그 돈으로 100억도 벌고 200억도 벌어 결국은 더 큰 부를 이루리라. 그때가면 아들이 나머지 자식들에게도 더 많이 배당하리라. 외아들이니 기제사도 모셔야 하고 부모님도 공양해야 한다. 아들이 먼저 성공해야 집안의 중심이 잡히고 질서가 유지되는 법, 나머지 자식들 역시 그의 그늘 아래서 결국은 더욱 많은 재물이 곳간에 차이리라.

그러나 과연 딸들의 생각도 그럴까. 지금 당장 부자가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그저 공평하면 되었다. 공정한 분배를 원했고 기회의 균등을 주장했다. 민법에도 나와 있지 않은가. 상속권은 아들, 딸 구별 없이 균등하다고. 언젠가 이루어질지 모르는 더 큰 부보다는 지금 당장 편안한 생활이 좋고 불확실성을 떠안은 장래 거대한 부보다 안정적인 당장의 작은 부를 선호했다. 남동생에게 각자의 미래를 의지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업하다 몽땅 말아 먹으면 어디 가서 하소연 하나. 설사 성공한다 하더라도 기다리는 동안의 궁핍은 어떻게 보상받는다는 것인가.

그렇게 각자의 생각은 식구끼리도 다른 법이다. 가치관도 다르고 정의의 기준도 다르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형제들이라 해도 살아가는 방법론이 다르고 추구하는 인생관도 천차만별이다. 언젠가는 아비의 뜻대로 모두가 더 잘 사는 세상이 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 딸들은 이 순간이 한 없이 더 소중하다.

그래서 겨우 식구 7명인 한 가정이 마치 정치하는 여의도 사람들처럼 세 파로 나뉘게 되었다. 아비와 아들의 뜻이 한 곳에 모였고 네 딸들의 뜻이 다른 한곳에 모였고 중립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뜻이 중간지대에 위치했다.

세월은 십 여 년도 더 흘러 2015년 정초! 갑작스런 담배 값의 두 배 인상으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국민건강을 위해서 금연을 유도하는 것은 좋지만 결국 금연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런대로 사는 사람들보다 최저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부담이었다. 위정자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었지만 결국 정부의 곳간이 비어서 생긴 증세였다. 거둬들이기 용이한 직접소비세를 통해 곳간을 채우려는 정책이었다.

세금이라는 것은 소득세와 소비세가 있다. 소득세는 소득이 많을수록 더 많이 거두는 세금이고 소비세는 소비하는 만큼 비례하여 물건을 살 때마다 내게 되는 세금이다. 그런데 그렇게 엄청나게 늘어난 담배세는 소비세라서 문제였다. 나라의 곳간을 채우는데 소득세로 채우든 소비세로 채우든 뭐랄 일은 아니지만 소비세를 채택하는 것이 고통스러워지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점이 문제다.

말하자면 나라의 빈 곳간을 수입이 많은 사람에게 집중되는 소득세로 채우면 좋겠는데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의 갹출로 채우는 것이다. 부자들의 소득세는 동결시키고 일반 대중의 소비세를 통해 부족한 국가 재정을 채우려 함으로서 소수 부자에게 유리하고 다수 빈자에게 불리한 구조였다. 자연 부자감세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업소득을 많이 올리는 대기업 역시 세금을 올리지 않으면 목욕탕 집 아들처럼 많아지는 이익금으로 사업을 더 크게 일으켜 나라 전체의 경제가 성장하기는 한다. 그래서 결국은 그들의 영향력 안에 사는 대다수 영세서민들도 그 덕에 더 잘 사는 세상을 누릴 것이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의 성장으로 부자나라가 되어 더불어 우리 모두 부자가 된다면 숨도 안 쉬고 좋아할 일이다.

그렇더라도 그것이 수많은 영세서민들이 당장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면 곤란하다. 훗날의 대가 역시 확정적인 것도 아닌데 막연한 희망으로 감수하라면 약자일수록 힘들지 않을까. 집안 경영이든 나라경영이든 곳간을 관리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리 없다. 굳이 차이라면 크기만 다를 뿐이다. 곳간 속의 재물이란 넘치면 나눌 일이고 비면 채울 일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합리적이라야 한다. 전체가 충족할 수 없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리해야 맞다. 아들은 한명이고 딸은 네 명이라서 그렇다. 부자는 소수고 가난한 서민은 다수라서 또한 그렇다.

큰 곳간이든 작은 곳간이든 합리적으로 채우고 공평하게 나누는 세상을 기다린다. 사단이 나기 전 그의 집 창가에서 5남매의 목소리가 도란도란 즐거움을 토해내던 풍경이 그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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