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오/소설가
날이 차다. 하늘을 본다. 여전히 푸르고 양 떼를 모는 구름은 한가롭다.
벌거벗은 가로수 아래 옷깃을 여민다.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가로수가, 마지막 쥐고 있던 지전 한 닢을 건넨다. 따뜻한 커피라도 사 마시라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길은 광장이 되고 함성으로 울려 퍼진다.
“탄핵만이 답이다! 지금 당장 물러나라!”
“내란수괴 윤석열을 구속하라!”
함성에 놀란 양 떼들 뿔뿔이 흩어진다. 흩어진 자리에 하나둘, 횃불이 타오른다. 강경대. 강원용. 계훈제. 고정희. 김근태. 박종철. 이한열. 전태일….
이 추운 겨울날, 누가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는가.
한가롭게 노니던 양 떼는, 또 무슨 죄로 쫓겨나야 하는가.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란 자가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헌법기관을 침탈하고, 시민의 안녕을 겁박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일이다. 종이 주인을 배신하는 것도 모자라 목에 칼을 들이대다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타오르는 횃불은 말한다.
‘우리 모두가 행동하는 양심이 될 때 민주주의는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라고.
그렇다.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가.
피와 눈물과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일궈낸 민주요 자주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땅의 주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는 것을. 소중한 것일수록 꼭 지켜내야 한다는 것을. 지금이야말로 ‘행동하는 양심’에 따라 횃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야 할 때라는 것을.
남은 한 닢까지 건네준 가로수가 응원하듯 횃불을 든다.
달이다. 둥글고 환한 만월이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이젠 춥지 않다. 나 하나가 아닌 우리는, 모두는,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따뜻하다. 하늘엔 다시 양 떼가 모이고 광장에 가득한 촛불은 축제로 타오른다.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영하의 혹독한 추위가 몰아쳐도. 가로수 이렇게 든든하고 한 하늘 가득, 저렇게 눈이 부시지 않은가. 무엇보다 봄풀처럼 따뜻하고 꺾이지 않는 우리가 있지 않은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