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은 완전한 진보의 집권이다. 하루를 살더라도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이 평등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그런데 아직은 이렇게 보수적인 나라에서 말도 안 되는 꿈이긴 하다. 더욱이 이 나라는 빈약한 진보 표심조차 조금이라도 당선가능성 높은 중도후보자를 뽑느라 올바르게 표심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꿈은 자유로운 것이다. 뚜벅뚜벅 열린 길을 걷다보면 30년이나 50년쯤 후에는 자연스럽게 꿈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본다. 몇 달 전처럼 허무맹랑한 지도자가 나와 중간, 중간 비상계엄 같은 불상사만 저지르지 않으면 어쩌면 나의 꿈은 20년쯤 뒤로 앞당겨져 이루어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자꾸 헛된 꿈일 거라는 의심이 든다. 평등한 나라란 그저 이상일 뿐 도저히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겠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의 계엄이후 일상을 보면 상상조차 어렵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저질러져 그저 놀랍다. 기득권이,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수구정치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새삼 깨우치게 된다. 보수라고 닥치고 나쁘다는 건 아니다. 보수라는 이념 자체는 세상의 반을 나눌 가치가 있다고 본다. 다만 그 안에서 힘을 가진 자들이 그 힘을 이용해 그토록 쉬운 옳고 그름의 구분조차 어렵게 해 화가 난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 생기는 그 많은 억지 논리들, 보수와 진보가 서로 엉켜 반대를 위한 반대를 무한 반복하며 얼마나 많은 국민을 더 우롱하려는 것인지 실로 참담하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삶의 가치가 똑같이 고귀하고 평등하다. 특별하지 않는 생명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삶의 가치를 인간의 고귀한 권리에 두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부의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재단하려 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힘없는 노동자가 대자본에 어떻게 희생하는지, 눈물을 흘리며 공산주의 이론을 만들었지만 과연 어땠나? 북에서는 여태 이론은 허울뿐으로 타락한 권력이 더 큰 부조리로 대중을 희생시키고 있다. 남도 그 밥에 그 나물이 많다. 노동자 권익을 위해 시작한 노동운동가랍시고 종국에는 노동귀족으로 변질되기 일쑤였고 평등한 인권을 부르짖던 운동권 지도자들도 권력을 얻으면 민중을 배반하고 수구가 되는 자가 많았다.
숲에서는 나무들도 사람처럼 모여 집단생활을 한다. 형편이 다른 큰 나무와 작은 나무가 옹기종기 이웃으로 살고 있다. 땅에 대한 권리, 빛에 대한 갈구가 크고 작은 나무라고 다를 리 없다. 그러나 큰 나무는 자신의 큰 힘을 더 큰 나무가 되는데 쓰고 작은 나무는 큰 나무에 가려 희망을 잃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숲에는 절대적으로 진보적인 간벌이 필요하다. 빛이 부족해 시름하는 작은 나무들에게 큰 나무의 가지 몇 개 쳐내고 공평하다고 생색을 내면 안 된다. 어서 빨리 나의 꿈이 이루어져 온갖 비바람을 큰 나무가 다 막아주었으므로 비로소 작은 나무가 행복할 수 있었다는 보수의 궤변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숲이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