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난리법썩인 '폭싹 속았수다'라는 드라마를 보고 나의 초등학교 2학년 때 추억 한 토막을 끄집어냈다. 그날 어머니는 내게 새 검정 고무신을 사 주셨다. 지금은 박물관에나 있을법한 신이지만 그땐 얼마나 좋았던지 날아갈 것 같았다. 그리고 이튿날, 나는 신발장에 새 고무신을 넣어두면 누군가 가져가지 않을까? 무척 초조했다.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고무신이 잘 있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쉬는 시간마다 잘 있던 고무신이 하교시간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한쪽은 너무 커서 벗겨지고 다른 한쪽은 적어서 안 들어가는 짝짝이 고무신 한 켤레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다음날! 어떻게든 새 신을 찾으려 해도 똑같은 색의 검정 고무신은 그게 그거 같고 내 고무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별 수 없이 나도 눈 딱 감고 새 신을 훔쳐 신고 집에까지 뛰어서 도망을 왔다. 그리고 전리품을 확인하는데 아뿔싸! 훔친 고무신의 앞에 덩그러니 꽃무늬가 있는 게 아닌가. 그때만 해도 검정 고무신의 남녀 구분은 꽃무늬가 희미하게 있느냐 없느냐 하던 시절이었다. 기껏 훔친 고무신이 여자용 고무신이라니 어떻게 신고 다닐지 다시 앞이 캄캄해졌다.
또 다음날, 나는 몰래 훔친 여자고무신을 다시 신발장에 넣어 놓고 나로서는 너무도 한심한 그 짝짝이 신발을 또 차지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급하게 취한 신발이 너무 작아서 엄지발가락이 아파 돌려주고, 또 그 다음 날은 너무 커서 자꾸 벗겨져 돌려주면서 이틀에 한 번씩 보기만 해도 미쳐버릴 것 같은 그 짝짝이 신발을 계속 차지하고 있었다.
일주일쯤 지난 후 결국 나는 새 신을 되찾는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말았다. 새 신만은 못하더라도 비교적 쓸 만한 신발이면 만족하기로 한 것이다. 흡족하진 않지만 마음을 비우고 그런대로 쓸 만하다고 생각한 신발을 훔쳐 신고 왔더니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웬걸, 마을 어귀에 도착하자마자 동네 친구가 나의 훔친 고무신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 고무신의 뒤쪽에 열십자로 칼자국이 나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분실을 염려한 표시라며 자기 신이라고 낚아채가는 것 아닌가.
절망했다. 그런 내 얼굴과 짝짝이 신발을 번갈아 보시던 어머니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야단을 치실지 알았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시니 오히려 기가 살았다. 그 때부터 나는 마치 어머니 탓이라도 되는 양 떼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 반에 운동화를 신은 애는 두 명밖에 없어서 훔쳐가도 신지 못하니 차라리 운동화를 사달라고 보챘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정말로 운동화를 사 오셨다. 나는 뛸 듯이 기뻤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신발을 지키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요즘 들어 그때 어머니 생각이 갈수록 간절하다. 지금의 나는 내일 당장 죽어도 저승의 어머니보다는 10년을 더 살았다. 그래서 후회한다. 그때 그 짝짝이 신발을 일 년 내내 신고 다녀도 괜찮았을 텐데. 겨우 50평생을 살다 가신 어머니를 너무 괴롭혀드린 것 같다. 나의 운동화를 사기 위해 어머니는 버스 대신 20리 길을 얼마나 더 걸어 다니셨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