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할머니 이야기다. 홀아비인 아들과 같이 살면서 무던히도 출가한 딸들을 괴롭히는 분이 계시다. 괴롭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주말마다 돌아가면서 멀리 사는 딸들을 소환하는 거다. 어떤 날은 김치가 떨어졌다고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식혜가 먹고 싶다며 한 번 들리라는 거다. 말이야 반찬타령이지만 평생 내가 너희들 키우느라 희생했으니 이제 너희가 늙고 병든 나를 보살피라는 논리다. 그나마 멀리 사는 딸들은 그 정도에 그쳐서 다행이다. 같은 도시에 사는 막내딸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로 호출을 했다. 세탁기가 돌아가지 않는다고도 하고 약을 꺼내야 하는데 손이 닿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래서 급히 가보면 영락없이 반찬이 떨어졌다며 이 것 저 것 반찬을 해놓고 가라고 하셨다.

견디다 못한 딸들이 차라리 돌아가면서 어머니를 직접 모시겠다고 제안했다. 각자 직업을 가진 처지라 시간 내는 것이 만만치 않으니 돌아가면서 한 달씩 모시기로 한 거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단박에 거절하셨다. 아들집이 있는데 내가 왜 사위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냐고 오히려 호통을 치셨다. 그리고 한 동안 전화를 하지 않으시더니 보름을 참지 못하고 다시 전화를 하셨다. 나이 들면 죽어야 한다며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살아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자는 말로 딸들을 달달볶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할머니는 노환으로 이가 성치 않았다. 그래서 거의 매일 죽으로 식사를 하신지 오래됐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들에게는 갖가지 반찬을 만들어놓고 가라고 하셨다. 어떤 날은 노인들이 먹기 불편한 갑각류인 간장 게장을 요구 하셨고 또 어떤 날은 질긴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해놓고 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음식을 해놓고 간 딸은 다음 주 차례인 동생에게 전화해 보면 해놓고 온 음식이 모두 깔끔하게 비워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할머니는 멸치볶음이나 콩자반 같은 것을 요구하셨다.

눈치 챘겠지만 이 모든 것은 아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할머니 역시 돌아가며 딸들의 집에 머무르면 더 편했겠지만 아들이 걱정되어 그럴 수 없었다. 아들 역시 누나들에게 이런 식의 부역을 원하지도 않았고 할머니 또한 내심 딸들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했던 것이다. 힘이 있을 때는 직접 하던 살림이지만 더 이상 그럴 힘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딸들이라도 괴롭혀야 아들이 산다고 믿었다. 딸들 역시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차별대우가 억울했지만 맹목적인 어머니의 아들사랑은 바꿀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합리하지만 그것이 어머니가 남은 세상을 사는 방법이요, 진리인 것을. 할머니의 딸로 태어난 죄라고 여길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랬던 할머니의 전화가 요즘 뜸하다. 이제는 전화 걸 힘도 없을 정도로 연로하셔서다. 생각다 못한 자식들이 동사무소에 요양보호사 지원 신청을 했다. 할머니는 아들의 간호를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남자는 밖으로 돌아야 한다며 주말마다 딸들의 방문을 원했다. 그러나 딸들은 하나같이 직장생활을 하는 처지였다. 그래서 국가의 도움을 받을 생각으로 할머니에게 당부를 했다. 사회복지사가 방문해서 뭐든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또 할머니의 엉뚱한 대답 때문에 사달이 났다.

“할머니 집 주소 아세요?”

“알지. 내가 얼마나 기억력이 좋은데. 제천시 하소동 288-5야.”

할머니가 정신을 집중해 또렷하게 대답하는 것 아닌가. 한 순간에 무료 돌봄 서비스 받으려는 딸들의 계획이 틀어졌다. 연차휴가를 내고 할머니 집에 들렀던 큰 딸이 원망스럽다는 눈빛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휴우!’ 한숨을 쉬었다. ‘휴우!’ 할머니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요양보호사 돌봄 서비스가 뭔지는 모르겠고 당신이 요양원으로 들어가면 아들이 밥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까봐 눈앞이 캄캄했던 것이다.

“정 힘들면 한 달에 한 번씩만 와도 된다.”

“요양보호사는 무슨... 나 아직 멀쩡해.”

딸들은 별 수 없이 밤늦도록 회의를 한 뒤 두 가지 사항을 결의했다.

1. 성능 좋은 냉장고를 구입해 올 때마다 더 많은 반찬을 해놓고 갈 것.

2. 돌아가면서 분기에 한 번씩 책임지고 남동생의 맞선을 주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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