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의 끝자락에 이르면 나는 휴일 하루를 농장에서 매실나무 가지치기로 소일한다. 처음 나의 농장은 고구마나 옥수수 농사로 시작했는데, 심심찮게 멧돼지나 고라니의 방문을 받기 시작하면서 매실나무 농사로 바꾸어버렸다. 그들과 나누어 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부실한 관리가 주변 어른들에게 사치스럽게 보이지는 않을까 두려워 바꾸게 되었다. 그렇게 바꾼 매실나무 농사는 이제 세 해가 넘어 제법 울창한 편이라 가지치기가 절실하다. 과일나무라는 게 오며가며 남의 집 과수원이나 훔쳐볼 때는 심기만 하면 무럭무럭 잘 자라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만만치가 않다. 나무도 사람과 같아 사랑을 받지 못하면 부실해져서 그렇다.
가지치기라는 게 나는 그저 많이 자란 가지는 뚝 잘라주고, 적게 자란 가지는 살려 공평하게 키우면 되는 줄 알았다. 아무 생각 없이 가지를 뚝뚝 잘라냈는데, 그렇게 다듬어진 가지들은 마치 정원수같이 동그랗게 되어서 내가 보기에도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가지치기 경력이 이십 년이나 된다는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과일나무는 초창기부터 가지를 잘 정리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잡목이 된다고 한다. 과일 나무는 과일이 실하게 열려야 가치가 있는데, 관상수처럼 보기만 좋으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어서 즉시 일당을 주고 그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만 했다.
그런데 올해부터 나는 다시 직접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전문가에게 맡긴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어깨너머로 얻은 선지식들을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살리고 버릴 가지를 내가 알아서 하는 가지치기 과정에서 얻을 소소한 행복들을 전문가에게 뺏겨버린다고 생각하니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다시 시작한 나의 매실나무 가지치기는 여전히 신통치 않다. 일단 잘라버린 가지는 다시 돌이킬 수가 없어서 자꾸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가지를 자르기 위해 내 나름의 가지치기 기준을 만들었다. 초보자인 나로서는 그런 기준이라도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다.
그 기준이라는 것은 장황할 것도 없고 그냥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나무 전체가 골고루 햇볕을 받기 위해 방해가 되는 가지들을 쳐내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가지 사이로 바람이 잘 통하도록 겹친 가지들을 솎아내는 것이다. 가지치기가 뭐 별것인가. 햇볕 잘 받고 바람 잘 통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어떤 가지가 햇볕을 잘 받고, 바람 잘 통하는 데 방해가 되는 가지인가. 그 기준은 딱 한 가지다. 덮어놓고 위로만 뻗어 오른 가지들을 잘라내는 것이다. 그들은 실하게 뻗어 올라 탐스럽지만, 옆가지에 배려할 줄을 몰라 영양분을 독차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왕성한 성장력이 주변의 많은 약한 가지들에게 햇볕을 양보할 줄 모르고 바람이 가는 길목을 막지 않는가. 그뿐이 아니다. 그들은 확보한 영양분으로 열매를 맺으려 하지 않고, 다음 해에 더 많은 햇볕을 확보하고자 스스로의 몸집을 키우기에만 여념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힘없는 가지들은 더욱 힘없이 움츠리고 한 해를 보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아무리 실하다 한들 열매 없는 가지가 무슨 소용이며, 실한 열매 하나를 위해 나머지 열 개의 열매가 부실해진다면 또한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러니 내가 나서서 사정없이 잘라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가지치기 초보자들은 제아무리 독하게 기준을 세워도 막상 자를 때는 반대로 하기 십상이다. 하늘을 향해 꼿꼿이 솟은 실한 가지들은 아껴두고 주변의 많은 잔가지들을 덥석덥석 자르는 것이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있다고 생각하는, 짧은 식견 탓이다. 나 역시 그런 시행착오 때문에 첫 해 가지치기를 망친 이후 전문가의 손을 빌려가며 배워야만 하지 않았던가. 치열한 경쟁에서 이긴 가지들이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 올랐다는 것은 경쟁에서 이긴 것이지만, 다른 많은 가지들에게는 염치없는 짓일 텐데, 그런 혜안이 내게 없어서 생기는 일들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동안 자신에게 가려 초라해진 옆가지들에게 햇볕과 바람을 나눌 수 있었다면 모르지만, 그러하질 못하니 나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 나무 전체를 위한 가위질이 돼야 할 것 같다.
배려하고 나누는 마음은 자신의 몫을 떼어내 스스로를 낮추는 것 같지만, 공동체로는 다 같이 좋아지는 것, 세상의 균형을 찾는 일이다. 이상적인 매실나무처럼 골고루 햇볕을 나누고 다 같이 시원한 바람을 누리는 일이다. 나도 이제 가지치기할 때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과감하고도 단호하게 잘라내야겠다. 혼자만 염치없이 뻗어 오른 가지일수록 망설임 없이 잘라내야겠다. 잘려 나간 실한 가지들이 조금도 아까워 보이지 않게 되는 날, 비로소 나도 매실나무 가지치기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