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바로 이 나라 전체에서 축지법(縮地法)을 쓸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했다. 요즘 세상에 축지법(縮地法)이라니, 책에서나 보았던 '땅을 접는 방법’이란 말인데 어디 가당키나 한가. 정말로 땅을 접었다 펴는 방법이 있을 리 만무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그렇더라도 혹시 보통 사람들보다는 훨씬 빠르게 이동하는 방법이 있다는 말일까. 아니면 평범한 사람이라면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경이적인 지름길이라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귀가 솔깃했다.
그런데 정말 그랬다. 한 발짝을 띄면 강원도요, 또 한 발짝을 띄면 충청도였다. 삼십여 분 동안 오솔길을 걸으며 아홉 번이나 강원도와 충청도의 도계를 넘나들었으니 축지법(縮地法)이 아니면 무엇인가. 강원도 영월에 있는 김삿갓 시인의 생가를 찾아가는 길이 그렇다는 말이다. 길옆으로 흐르는 개울을 경계로 강원도 영월군과 충청북도 단양군으로 행정구역을 구분했기 때문에 걸어가면서 계속해서 개울을 넘어갔다, 넘어오기를 반복해야 해서 생긴 말이다. 걸음걸이가 느려서 늘 문제였던 내가 축지법(縮地法)을 쓰다니, 그야말로 깜짝 동화 같은 일이었다. 더욱이 김삿갓 시인의 생가는 조선 시대 비기로 알려진 '정감록'에서 말하는 십승지(十勝地)였다. 십승지(十勝地)라면 외부인이 도저히 찾을 수 없어 천지 대 개벽이나 전쟁이 일어나면 재앙을 피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명당이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풍수학적으로 에너지가 충만한 땅이라는 말인데 그런 곳을 가는 길이니 어쩌면 축지법(縮地法)이라야 어울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방랑시인으로 유명한 난고 김병연은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풍자 시인으로, 아호나 본명보다 김삿갓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허름한 삿갓을 쓰고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며 양반들의 부패를 풍자했기 때문이다. 다섯 살 때 홍경래의 난으로 삼족이 멸할 위기에 처하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그는 떠돌이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전국을 떠돌면서 소박한 서민들의 애환을 그리기도 하고 인도주의적 평민사상을 부르짖기도 했다.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은 시절, 입에서 입으로 구전을 통해 그의 시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니 시인의 생가 또한 이렇게 멋진 곳에 지어졌나보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은 축지법을 쓰는 길이 시인의 생가와 묘지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시인은 방랑을 떠나기 전까지 이곳에서 살다가 생을 마친 다음에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누워 있다. 태백산의 끝자락에서 태어나 살다가 소백산의 시작지로 돌아와 묻혔는데 태백산의 끝자락은 생가요, 소백산의 첫 자락은 묘지였던 것이다. 게다가 두 지역을 연결해주는 길은 축지법이 가능한 길이라니, 시인의 삶 못지않게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릇 인생이란 땅에서 와서 난 곳으로 돌아가는 여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의 자궁을 빌어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삶 자체가 땅에서 취한 음식에서 얻어지는 것이니 우리는 어머니의 몸에서 났더라도 사실은 땅에서 난 것이다. 그러니 돌아갈 곳도 당연히 땅이요, 어머니요, 고향이리라.
축지법으로 올라간 길이니 내려오는 길도 당연 축지법이라야 했다. 그런데 올라갈 때는 처음 접한 신통력에 취해 귀 기울이지 못했는데 내려오다 보니 개울물이 유난히 맑다.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노래처럼 구성지다. 마치 세월을 노래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들렸다. 땅에 얽힌 그 많은 사연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 졸졸졸 장단을 맞추며 노래하고 있었다. 노래로서 태백산과 소백산을 구분하면서 강원도와 충청도를 나누기도 하고 다시 하나로 모으기도 하며 흐르는 것이다.
이 물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물 또한 난 곳으로 돌아가는 여정일 테다. 하늘에서 왔으니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린 물이 끊임없이 자신을 낮춰 낮은 곳으로 흘러 점점 하늘과 멀어지기는 하나 결국은 넓은 바다에 이르러 하늘과 맞닿지 않는가.
그래, 사람도, 물도, 세월도 모두는 축지법처럼 이렇게 한 발짝씩 건너갔다 건너오기를 반복하는 일이다. 그 많은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이렇게 시인의 흔적을 만나고, 돌이킬 줄 모를 것 같던 개울물 역시 다시 하늘을 만나지 않는가. 오늘 여기서 만난 축지법은 한 발짝을 떼면 충청도요, 다시 한 발짝을 떼면 강원도였지만 한 발짝을 떼면 삿갓 시인의 시대요, 또 한 발짝을 떼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기도 했다. 시대를 넘나들며 세상 이치를 일깨워 주는 세월의 축지법이었다.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도 아래로, 아래로, 나와 같이 축지법을 쓰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