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 일로 기억한다. 사소한 일로 칭찬받을 일이 생겼는데 어머니가 난생 처음 짜장면을 사주셨다. 그런데 참, 그 짜장면이라는 검은 국수가 얼마나 맛나던지 단박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분개했다. 이렇게 맛난 음식을 어머니는 그간 나만 제켜두고 드셨다는 것 아닌가. 철없는 소년은 앞 뒤 구분을 못하고 두고, 두고 어머니가 밉기만 했다.
그런 기억으로 생긴 일이지만 지금도 나는 자식들에게 짜장면을 곧잘 사준다. 아이들이 크면서 졸업식을 하거나 칭찬할 일이 생기면 외식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메뉴는 선택의 여지없이 짜장면이다. 다른 것 좀 먹자는 항의가 빗발치지만 녀석들의 의사 따위는 거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별 감동 없이 아이들이 투덜대며 짜장면을 먹기 일쑤지만 무시해 버린다. 계산을 책임지는 자격으로 나의 추억을 진하게 향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때로 어머니가 원망의 대상이기는 했어도 존경하지는 않았다는 기억이다. 사랑했지만 별로 자랑스럽지 않았다는 의미다. 유별난 자식 사랑과 바보 같은 헌신을 생각하면 적어도 내게는 존경받을 자격이 충분했지만 그러지 못한 거다. 그 만큼 어머니는 자식 복이 없었다. 그 이유라는 것도 한심했다. 당신의 삶이 그리 폼 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사회적인 명예도 없었고 물려받을 만한 부의 축적도 없었다는 뜻이다. 그 어떤 핑계가 구실이 될까. 그냥 내 그릇이 평균도 안 되었던 거다.
그렇더라도 어머니 역시 꿈이 있지 않았을까. 나처럼 꽃다운 젊은 날도 있었고 스스로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다 가신 삶이다. 요즘 들어 생각하기를, 그런 어머니의 꿈은 과연 자식의 명예였을까. 아니면 출세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식을 향한 그 무엇 말고는 없을 것 같아 짠하다. 살아생전 단 한 번도 어머니의 꿈이 궁금한 적 없었으므로, 그리고 내게 말한 적도 없었으므로,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세월이 흐르면 사람의 뇌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그래서 추론한다. 오직 자식자리 높아지기만 바라다 황망하게 가신 내 어머니의 꿈은 분명 나였을 것이다. 내게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바라셨을 거다. 혹시 그 짐작이 맞는다면 어머니의 꿈은 늦게나마 이루어졌다. 강산이 세 번 바뀌도록 변하지 않고 나는 어머니를 기억하므로. 그리워하므로.
꿈의 실체는 누구에게나 크게 가질 자유가 있어 공평하다. 나 역시 그러해서 꿈이 대찼다. 젊은 날에는 남들처럼 명예욕이 컸었다. 또한 엄청난 부자가 되는 삶을 그리며 살았다. 무엇이든 노력하면 될 것 같았고 되고자하는 노력도 있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이뤄진 부분도 있지만 포기한 부분이 더 많다. 꿈이라는 것이 이루려고 꾸는 것일 테지만 대개는 야속하게도 이뤄지지 않았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세상이 지루하지 않고 살만하지도 모르는 일이다. 때로 전혀 이루어지지 않거나 생각보다 작게 이루어지더라도 슬플 이유는 없었다. 세월이라는 묘약 덕분이다. 더러 포기하기도 하고 새로운 꿈으로 방향전환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까닭이 나는 세월이 약이기 때문이라 믿는다.
그리고 나도 이제 어느 정도 안다.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치가 있게 마련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한계치조차 운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원한 것은 아니지만 세월의 묘약을 먹고 체념하는 절차를 반복했는데 그런 절차로 얻어지는 게 바로 연륜 아닐까. 나이가 노력해서 얻는 훈장은 아니지만 경험이 커질수록 좀 더 넓고 너그럽게 생각하는 힘이 생기는데 나는 그것이 연륜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변명하자면 지금의 나가 나로서는 나의 최대 한계치였고 신이 내게 허락한 행운의 총량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겠지만 지금 나의 꿈은 어떻게 보면 많이 작아져 있다. 아니 작아졌다기보다는 현실적으로 변한 거다. 그러나 그 바뀐 꿈이 소박해보일지언정 다른 각도에서 보면 더 가치 있고 소중할 것도 같다. 소박하지만 소중하다 여기는 그 꿈은 오랫동안 기억되는 사람으로 남는 거다. 어느 날 내가 온 곳으로 돌아가더라도 사랑하는 나의 아들, 딸들에게 좋은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다. 비현실적일 게 분명하지만 아내 역시 제법 괜찮은 남편으로 추억했으면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직장생활도 동료들에게 닮고 싶었던 직장상사로 기억되면 좋겠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한 번은 더 보고 싶은 벗으로 기억되고 싶다. 무에서 와서 살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지만 기억력이 풍부한 인간들에게 나라는 기억은 남기고 가야 한다. 기왕이면 남겨지는 또 다른 내가 비루하지는 않고 싶은 거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다. 사람의 유전자 또한 일종의 환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뒤늦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나의 삶이 내 어머니를 닮았다는 거다. 남을 위해 베푼 것이 거의 없는 일생이 그렇고 평생을 그저 내 울타리만 지키느라 산 것도 그렇다. 그렇다고 울 밖의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친 것은 아니지만 내세울 것 없는 이기적인 삶이 똑같다. 그 어미에 그 자식이라 그런지 삶도 닮았고 꿈도 닮았다. 스스로는 거창하게 대를 이은 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