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었지만 우리 집 달력은 해를 넘기지 못했다. 넘기기는커녕 여태 2024년 10월에 머물러 있다. 이유는 그날 밤 느닷없는 계엄령이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기왕의 계엄이야 선포하는 사람 맘이고 나로서는 작금의 나라정세처럼 그날 비상계엄 선포 후 늦기 전에 해제결의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서둘러 집 거실로 돌아가야 했으나 친구들과 마시고 떠드느라 계엄 선포 자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통장은 압수되고 카드도 정지되고 손발이 꽁꽁 묶인 채 서슬 퍼런 계엄 하에서 성이 풀리기 전까지는 절대 달력을 넘기지 않겠다는 송달을 받은 상태다. 시기를 놓쳐 뭘 어쩔 방법이 도저히 없고 비루하게 선처나 기다리는 중이다.
비상계엄의 선포 이유는 10월의 마지막 날 밤이라는 이용의 노래를 쓸쓸하게 아내 혼자 듣게 한 죄다. 이미 이 땅에는 아내를 위해 계엄을 선포한 자도 있는데 거꾸로 계엄당할 짓을 하는 남편이라니 그야말로 간 큰 남자 아닌가. 남자라 밖으로 돌며 일을 해야 한다는 구실이 없지 않았으나 그렇더라도 날이 날이었다. 갱년기 아내를 버려두고 그 중요한 날에 12시를 넘겨 귀가했다는 사실은 뉘라도 도저히 용서받기 어려운 세상이다. 얼마 남지 않은 직장생활, 가만히만 있었어도 밥은 얻어먹고 다닐 텐데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깽판을 놓았는지 모르겠다. 술이 취했다고는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돌이켜보면 없었던 일로 되돌릴 기회가 있기는 했었다. 원하는 가방을 하나 사주면 용서할 수도 있다는 언질을 수차례 받았기 때문이다. 버텼다. 설마 그만한 일로 탄핵을 당할까 우습게 봤기 때문이다. 점점 나이는 먹어 가는데 여전히 내가 갑이라고 생각한 거다. 그러나 아녔다. 하루, 하루가 지옥이었고 갈수록 괘씸죄가 더해져 이젠 가방 하나로는 정상회복이 불가능해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까 했지만 약세를 확인한 후로는 갈수록 요구사항만 더 커졌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돌이킬 수 있다면 다시는 이렇게까지 버티지 않겠다. 마늘이든 파든 까라면 까고 다듬으라면 다듬을 거다. 이미 뒤바뀐 세상에서 대들어본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본디 성공한 계엄이란 그런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