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집안에 우환이 있어 답답하신 어머니가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간 적 있다. 그때 복채를 받은 무속인은 무언가 영험하게 알아챘다는 듯 혹시 집 주변에 큰 나무가 있냐고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큰 나무는 없어서 없다고 했더니 없었으니 다행이지 있었으면 큰 일 날 뻔했다는 거다. 큰 나무가 없는 덕에 이 정도 액땜으로 더 큰 피해는 면했다며 부적을 써 주었는데 나로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지인의 권유로 거금을 투자해 웅담을 산 적이 있다. 조금씩 나누어서 여러 날 복용했다. 그런 이후 권유한 지인이 말하기를 곰 사육 농장주가 사업 실패로 싸게 팔아 횡재했다며 복용 효과가 있는지 물었다. 그래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했더니 그건 내가 그만큼 건강한 증거라는 거다. 언젠가 몸이 약해지면 그때 효과를 톡톡히 볼 거라는 말이었는데 말이란 참, 자기 합리화가 너무 쉬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 보면 그때 그 점술사나 웅담 구입을 권유했던 지인의 말보다 더 웃긴다. 너 나 할 것 없이 갈수록 왜 그렇게 스스럼없는 자기 합리화가 판을 치는지 모르겠다.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정치인들의 주장은 이제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쳐도 이건 아니다. 총칼을 들이대는 계엄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것이라니... 백 번을 양보해도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하고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모습에 정말 넌더리가 난다.

아무려나 집회결사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뜻이 맞는 사람끼리 뭉치는 것까지 뭐라 하겠나. 문제는 내란죄를 지어놓고도 일말의 죄책감조차 없다는 거다. 아무리 거대 야당의 폭주가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그 모든 것은 대의민주주의라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 사회적 합의였다. 결코 스스로의 신념을 포기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민의를 대변하는 정치인이기에 앞서 누구라도 인격체를 갖춘 한 사람의 인간일 터,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는 지키라는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민주주의의 꽃은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는 토론이고 합의일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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