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온 나라가 뜨겁다. 대개는 축하하느라 뜨겁고 일부는 깎아내리느라 뜨겁다. 차라리 중국 작가가 받는 게 낫다며 생뚱맞은 소리도 하고 아무리 배가 아파도 잔칫집에 꼭 그렇게 초를 쳐야겠냐고 핀잔도 준다. 자연스럽게 국민 정서가 또 둘로 갈라지는 셈이다. 뭐, 살펴보면 내 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긴 하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각자 나라 사람들마다 그들 역시 대개는 축하하고 일부는 시기한다. 그런데 곱씹어보면 한 사람을 선(選)한다는 자체가 수많은 사람들을 선하지 않는다는 뜻 아닐까. 다른 한 편으로는 한사람에게 절대 다수의 적을 만드는 일 같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혼란이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일상일 수도 있겠다.
슬쩍 깎아내리는 이유를 살펴보았다. 한마디로 역사왜곡이라는 주장이다.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가 4.3이나 5.18을 다룬 소설인데 진실 아닌 것을 진실로 오해하게 한다는 것이다. 역사를 핑계 삼은 지극히 정치적인 논리다. <채식주의자> 내용이 성경에서 벗어나 노벨문학상의 격에 맞지 않는다는 목사님도 있다. 이 또한 종교를 가장한 편협한 논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깎아내리는 사람들을 다시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연대는 한강을 낳고 고대는 4대강을 낳았다는 분 같은 경우다. 그렇게 부러우면 너도 내년에 노벨상 타봐, 굿럭! 하는 분도 마찬가지다. 노벨상을 받지 못한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노벨상 탄 사람을 비난하느냐는 냉소인데 내 속 시원하자는 거지 똑 부러지게 맞는 말도 아닌 것 같다.
아무려나 작가 한강은 누구에게든 축하해달라고 한 적이 없다. 비난해도 좋다고 한 적도 없다. 그저 어학실력이 부족한 나 같은 사람들에게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한글 원서로 읽게 해주었을 뿐이다. 역사라는 것은 왕왕 진영논리에 휘둘리는 게 현실이더라도 어떻게 왜곡이라고 우긴다고 있었던 사실이 없었던 게 될 수 있겠나. 아픈 과거지만 결코 작별할 수 없는 사실이고 우리 역사다. 서로 인정하거나 혹은 않거나, 때로 우리가 알거나 아니면 알지 못하거나, 삶에서 떼어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그로 인한 지울 수 없는 상처들이 서로 부딪히지 말고 극복하자는 의미로 작가는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한림원 역시 그 뜻을 높이 평가한 것이리라. 겨울과 봄이 끝없이 반복하는, 같지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