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보다 바람이 추운 날이었다. 기껏해야 한 평 남짓으로 보이는 밀폐된 초소에서 두 명의 군인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병장 진급을 눈앞에 둔 상병과 갓 입대한 이등병이 2인 1조로 짝을 이룬 것이다. 이등병이 조금이라도 찬바람이 들어올까봐 문을 꽉 닫고 창밖을 응시할 때였다. 바로 그 순간 정적을 깨는 소리가 났다. ‘뿌우우웅’. 상병의 엉덩이 부근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불쾌한 냄새가 풍겼지만 어쩔 것인가. 이등병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을 죽였다.
그런데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거라더니 느닷없이 상병의 주먹이 이등병의 가슴을 때렸다. “이××야! 냄새 나잖아!” 놀란 이등병은 황급히 초소 유리창문을 열어젖히고 환기를 시켰다. 그랬더니 또 상병의 주먹은 더 큰 소리를 내며 이등병의 가슴을 때렸다. “이×× 돌대가리네. 춥잖아 인마!” 가만히 있으면 냄새가 난다고 때리고, 문을 열면 춥다고 때리고…. 진퇴양난에 빠진 이등병은 울상이 되어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결국 몇 대의 매를 더 벌고 나서야 이등병은 하늘 같은 상병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 해결책이라는 게 또한 혹독하기만 했다. 초소 문을 최대한 조금 연 상태에서 이등병의 입을 상병의 엉덩이로 가져가 ‘후웁’ 방귀냄새를 빨아들인 후 벌어진 창문 틈새로 ‘후우’ 하고 내뿜기를 반복하는 거였다. 그때는 군대 생활이라는 게 그런 식이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웠다. 기껏 1년 남짓 먼저 입대한 또래 청년에게 노예취급을 받으면서 3년을 버텨야 했다. 그저 맞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고 얼른 맞고 자야 행복한 나날이었다는 것을 내 또래 남자라면 알 것이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후 드디어 내 아들도 군에 입대했다. 102보충대로 입대하는 녀석의 표정은 그야말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모습 같았다. 남자는 군대 다녀와야 어른이 된다는 말 같지 않은 위로를 해주고 돌아섰지만 내심 엄청난 상실감이 밀려왔다. 나의 그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장성하도록 엉덩이 한 대 때리지 않고 키웠는데 남에게 맞는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 같았다. 죽기보다 싫었던 군대생활이었지만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대신해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러나 녀석이 휴가 나와서 하는 말은 그간 한 대도 맞지 않았다고 한다. 구타가 없어졌다니 엄청난 민주화다. 그런데도 녀석의 입장에선 압박감이 큰가 보다. 그러거나 말거나 맞지만 않아도 어디인가. 비로소 안심이 된 나는 “나때는 말이야!”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무슨 무용담도 아니고 교훈이 될 얘기도 아니었지만 계속 그 단어가 튀어나왔다. 핸드폰이 없어서 힘들고 비데 없는 화장실이 고통스럽다는 녀석에게 “나때는 말이야”를 반복한다고 뭔 대수인가. 아무리 반복해도 성이 풀리지 않았다. 그런 내게 아들도, 아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아내가 날 째려보며 싸늘하게 딱 한마디 했다.
“당신, 꼰대소리 그렇게 듣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