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 안에서 양 같은 사람이다. 본디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순한 양으로 길들고 있다. 뭐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몸이 둔해질수록 마음이 귀찮아지는 것인지, 세월이 가면 생물학적으로 남녀 호르몬이 바뀌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살펴보면 대개 남자들이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야수 같은 자라도 나이가 들수록 밥상머리 앞에서 점점 순해지는 것을 보면 “옛 말이 틀린 것 하나 없구나!”하고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그런데 낮 동안만 그렇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 그 즉시 나는 야수로 돌변한다. 거대한 탱크 소리와 잠꼬대로 침실 전체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또 아내의 당당했던 위용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조용히 베개를 들고 피난길에 나선다. 아이들이 떠나면서 남긴 작은 방으로 잠자리를 옮기고 아침이 올 때까지 작전상 후퇴 한다. 때로 잠든 내게 윽박지르기도 하고 코를 비틀기도 했다는 것을 다 알지만 그렇더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아내는 매일 집 안에서 야수 같은 사람이다. 본디 사슴 같은 사람이었는데 살면서 내가 야수로 만들었다. 지시한대로 남편이 움직이지 않으면 수시로 화를 내고 식탁에서 또는 화장실에서 자신의 루틴대로 내가 움직이도록 끊임없이 세뇌하려 한다. 처음에는 말 같지 않아 무시하고 살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후환이 두려웠다. 그럴수록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위안하며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아내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젠장, 반려 견처럼 조금씩 길이 든 것 같은데 이제 와서 돌이킬 방법이 없다.
그런데 집 안에서만 그렇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아내는 순한 양으로 변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너무 친절할뿐더러 배려심의 깊이가 남들에게는 얼마나 각별한지 확 짜증이 난다. 별 수 없이 아내는 그런 사람이라고,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위로를 하지만 그렇더라도 한편으로는 늘 섭섭하고 괘씸하다. 반대로 안에서는 순한 양이 되고 밖으로 나가야 야수로 변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방법이 없어 나약한 넋두리로 이렇게 뒤끝이나 노린다.
무릇 세상이 다 그렇다. 매 순간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한다는 것은 기실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역지사지 한다는 것은 흐르는 물을 힘들게 거스르자는 의미다. 그러므로 약자는 당연하지 않고 때로 추접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속은 뒤집히지만 권력을 휘두르려면 일관성이라도 있길 바란다. 이리 구분하고 저리 가리는 권력은 가끔 누군가에겐 착시현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침실 안팎이든 집 안팎이든 사람간의 질서는 늘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병탄하는 삶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