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해 모닝커피를 마실 때마다 덜컹, 덜컹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같은 소리를 내며 변함없이 목적지를 향한다. 역마다 그 많은 사연을 담아 나르는 소리일 텐데 종착역에 이르는 여정이 늘 같기만 하다. 이런 기차의 여정이 사람의 일생과 같다는 생각에 이르자 퍼뜩 지난 년에 떠나신 장모님 생각이 난다.

나의 장모님은 말년에 천식으로 참 많이 고생하셨다. 종일 공기청정기를 틀어놨지만 서울의 탁한 공기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혹시 시골의 맑은 공기가 도움이 될까싶어 나의 집에 몇 달 모신 적이 있다. 충청도와 강원도 사이에 위치한 작은 도시에 살던 나의 집밖 공기로 한 숨이라도 어른의 호흡이 편안하셨으면 했던 거다. 그러나 병세가 중해 시골로 오셔서도 24시간 산소 호흡기를 달고 사셔야하는 처지는 마찬가지였다. 가까운 경로당 왕래조차 어려우신 까닭에 종일 거실에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헤아려보는 일이 대부분의 일과였다.

“하나, 둘, 셋, 넷 ...”무심하게 지나가는 자동차를 정성스럽게 세고 계셨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멈칫 숫자를 잃어버리셨다. 나름 장모님께는 중요한 일이었는데 하필 그때 여러 대의 차가 한꺼번에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다시 처음부터 하나, 둘 세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예순 다섯쯤에 이르러 또 숫자를 잃어버리신다. 틀림없이 각지에 흩어져 사는 자식들 얼굴이 떠올라 혼돈하셨다고 믿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장모님은 지나가는 자동차 대신 베란다에 널린 다육이 화분을 세기 시작하셨다. 움직이지 않는 화분을 센다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라는 표정으로 “하나, 둘, 셋, 넷 ...” 자신 있게 헤아리셨다. 그러나 숫자세기가 다시 어느 순간에 멈추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장모님이 갈수록 안쓰러웠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고 때로는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할수록 얼마나 다행인가. 미세먼지에 창문을 열지 못하고 TV만 보시는 것보다 이렇게 시골에 오셔서 문을 활짝 열고 돼지 머리세기를 반복하기만 해도 서울생활보다는 백 배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여쭤보기를 반복했다. “오늘은 몇 개까지 세셨어요?” “몰라, 예순 여섯인가부터 까먹었어.” 그렇게라도 관심을 가져주는 것밖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나는 참 무능한 사위였다.

그로부터 멀지않은 날에 장모님은 사위집이 불편하셨는지 병원치료를 구실로 서울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곧 덜컹거리는 삶의 종착역에 도착하셨다. 처음 온 곳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다시 한 번이란 있을 수 없는 매정한 귀향이라 슬펐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오늘도 기차소리는 여전하다. 오전 두 번, 오후 두 번 변함없이 덜컹거리며 지나간다. 그 어떤 난관에도 덜컹, 덜컹, 쉬지 않고 종착역을 향하는 기차 소리가 예순 아홉, 일흔, 숫자를 잃지 않고 헤아리는 장모님 목소리로 들린다.

 

저작권자 © 제천단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