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개 나이가 들수록 멀리 떨어져서 세상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긴다. 말하자면 나무보다는 숲 전체를 보는 버릇이다. 그렇다고 내 나이가 지긋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도 조금씩 시야가 넓어진다는 느낌이다. 나 역시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겠으나 지혜로워지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조금씩 빠져가는 육체적인 힘을 경험으로 극복하고 힘들어져가는 세상에 슬기롭게 적응하는 것이라 여기는 중이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무료한 시간에 <동물의 왕국> TV 프로를 보다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맹수인 사자의 일생이 방영되었는데 야생의 사자나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의 일생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동물의 왕이라는 사자도 어릴 적에는 엄마사자 곁을 떠나서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었다. 배고프면 울고 졸리면 자고 온갖 위험에서 지키는 일은 오로지 어미의 몫이다.
어느 정도 커서도 마찬가지다. 제 딴에는 다 컸다는 시늉으로 미숙한 사냥을 해보지만 처음부터 잘되는 것은 세상에 별로 없다. 적당히 어미를 도와가며 조금씩 흉내를 내며 성장하는 게 순리다. 발톱과 이빨을 가졌더라도 사용방법을 익혀야 소용되는 법이라서 그렇다.
그러다 절정기에 이르면 사자도 사람처럼 각자 독립하게 된다. 적당한 경험과 넘치는 힘으로 남부러울 것이 없게 된다. 사냥한 식량이 넘치지만 제 혼자 잘 났다고 생각할 뿐 힘 빠진 어미를 챙길 줄은 모른다. 사자나 사람이나 어미 역시 스스로 제 길을 가는 새끼가 대견할 뿐 뭔가 바라지도 않는다.
전성기가 지나도 별 문제는 없다. 슬슬 몸은 둔해지기 시작하고 감각도 떨어지지만 사는데 큰 지장은 없다. 떨어지는 힘을 기술로 보완하기 때문이다. 무뎌진 발톱대신 꾀를 부려 먹이를 구한다. 누군가 잡아놓은 먹이를 훔치거나 병약한 사냥감을 고르는 안목 따위가 스스로를 지탱하게 한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다. 더 늙어 힘으로도 꾀로도 사냥이 불가능해지면 사자는 굶어죽어야 한다. 젊은 날의 영화는 사라지고 인간처럼 새끼들이 자식의 도리를 다하면 더 살수도 있겠지만 비참하게 혼자 누군가의 먹이로 죽어야 한다. 그 한 가지가 오로지 사람과 다른 점이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 또한 수명이 남았어도 죽어야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고독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인간이 사자와 다른 딱 한 가지가 어미에게 보은하는 능력일 텐데 그런 능력을 갖고도 기억력 부족한 사자처럼 산다면 그가 바로 속담속의 금수만도 못한 인간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