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먹이를 찾아 산에서 내려오는 돼지가 많다. 그곳에서 먹을 것이 부족한 멧돼지는 늘 배가 고파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먹이를 탐하는 것이고 그러다 총에 맞아 죽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마냥 불쌍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축사에서 기르는 돼지와 달리 사람에게 잡히지 않으면 배는 고프더라도 오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숲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상위 포식자가 없으므로 먹이가 부족해진 것 말고는 돼지들이 훨씬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고 있지 않을까.
반면 축사에서 사람이 기르는 돼지는 항상 배가 부르다. 하루 세 끼 꼬박꼬박 사료를 맘껏 먹을 수 있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멧돼지처럼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전혀 없으니 그야말로 상팔자다. 그러나 인간이 기르는 돼지 또한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먹는 사료 가격보다 늘어나는 고기가격이 적어지기 시작하면 바로 도축장으로 끌려가기 때문이다. 자유로우나 먹을 것이 부족한 멧돼지가 불행한 것인지, 짧은 생존기간과 구속받는 행동, 그러나 평생 먹을 것 걱정 없는 배부른 돼지가 더 불행한 것인지 나로서는 궁금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보다 더 불행한 돼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미가 되기도 전에 죽어야 하는 어린 돼지 이야기다. 그들은 정상적인 돼지들보다 운명적으로 일찍 생을 마감해야 한다. 야외에서 즐기는 출장 뷔페에서 구워지는 아담한 바비큐 돼지나 무속행사 시 고사용으로 사용되는 돼지 같은 경우다. 흔히 그런 용도의 돼지는 성장을 마치면 사용하기 너무 번거롭다. 덩치가 크면 익히기도 어렵거니와 운반도 힘들어서 그렇다.
그런데 비참한 것은 그런 용도의 돼지는 무작위로 출하되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잘 자라지 않는 체질이거나 병에 의해 성장이 더딘 돼지라는 것이다. 다른 돼지들보다 위축된 삶으로 이미 불행하게 살고 있는 것도 서러운데 배려받지는 못할망정 그런 신체적인 결함으로 죽음까지 앞당겨진다고 생각하면 너무 측은하다. 돼지 농장의 주인 입장에서는 계속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돼지보다는 성장이 더딘 돼지를 없애는 것이 수익성을 맞추기 좋겠지만 돼지 입장을 고려하면 참으로 잔인한 일이다.
생각할수록 신기한 것은 그런 고기를 아무 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잘 먹고 있다는 것이다. 병들어 식용으로 부적합한 불쌍한 돼지를 고기가 연하다며 오히려 즐겨찾기 일쑤다. 비정상적인 고기를 비정상적인 가격으로 비싸게 사 먹는 셈이다. 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그렇게 늘 당하기만 하는 돼지들이 속도 없는지 늘 웃는 얼굴이라는 거다.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웃기만 하는 돼지에게 더 미안해지기 전에 나라도 가끔 웃어줘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