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왜대 뒷편 북악산/애독자 장경순씨 제공
청와대 뒷편 북악산/애독자 장경순씨 제공

대한민국의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탄지 벌써 여러해다. 복원이 이루어졌지만 복원이란 말그대로 복원일 뿐이고 불타기 전 숭례문의 참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가슴이 답답하다. 문명의 발달로 원형에 가까운 숭례문이 다시 세상에 드러났지만 우리 스스로 숭례문의 역사적 상징성을 파괴한 것이니 뉘라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쉬워한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겠고 세상 그 어디에 변형 없는 완전한 보전이 있을까만 이제부터라도 소중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교훈으로 삼는다면 정말로 좋겠다.

풍수 지리학에서는 서울을 관악산의 화기(火氣)에 무방비로 노출된 도시로 본다. 그래서 관악산의 불기운을 누르기 위한 부적과도 같은 존재로 숭례문을 꼽는 것이다. 즉 숭(崇)은 '높인다'는 뜻이고, 예(禮)는 음양 5행 중 '불'을 뜻하여 관악산 불에 대항하는 인위적인 존재가 숭례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화산 관악에 대한 두려움이 풍수학적으로 얼마나 컸는지, 또 우리의 조상들이 풍수학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짐작케 한다. 나는 과거 15년간 서울에 살면서 그런 관악산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특히 구로에서 사당방면으로 남부순환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정체구간이라서 창밖의 관악산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때 풍수학자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생각하며 보아서 그런지 관악산의 모양은 진짜 불길이 타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심히 바라보면 어떤 날엔 옛날 양반들이 집에서 쓰던 갓 모양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고 또 어떤 날엔 불길이 바람에 일렁이며 타오르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정말로 신기했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한양을 에워싼 산 가운데서 남쪽의 뾰족한 관악은 화맥(火脈)을 지닌 산이다. 이에 조선조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화기(火氣)을 끄기 위해 경복궁 앞에 서수(瑞獸)인 해태를 만들어 세우게 했다. 그리고 도성으로 통하는 4대문중 남대문을 대궐과 관악산의 정중앙에 배치하여 숭례문이라 칭하고 관악산의 불기운으로부터 궁궐을 보호하도록 인위적인 장치를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책은 관악산을 정남 쪽에 두고 정궁인 경복궁을 지으면, 불 산인 관악산에 눌려 나라에 큰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무학대사의 예언이 두려워 취한 방책이다.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이 자신의 고집에 따라 이성계를 설득, 오늘의 서울시와 같은 형태의 도읍을 건설하였지만 속으로는 무학대사의 경고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무학대사의 예언대로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과 수양대군에 의한 왕위 찬탈이 생기고, 200년 만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경복궁은 잿더미로 변했었다. 그 후에도 정유재란이며, 대원각 대형 화재 사건이며, 나라 안은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불로 인해 쑥대밭이 되었는데 다 화산인 관악산에 얽힌 이야기다. 이제 숭례문 화재 사건으로 화산 관악에 대한 방책까지 불타버렸으니 끊임없는 풍수학적 경고가 참으로 집요하다.

반면 관악산에 얽힌 풍수 이야기는 서두에서 밝혔듯이 양반들의 갓 모양과도 흡사하여 긍정적인 면도 존재한다. 바로 1975년 서울대가 관악의 북쪽계곡 아늑한 곳으로 이전, 자리하면서 옛 풍수설이 지닌 ‘불의 산’이라는 의미가 다시 다른 뜻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즉 학문의 전당인 서울대학교를 관악에 옮기니, 관악이 품은 불의 뜨거운 정기가 지성(知性), 야성(野性)의 젊은 정열과 결합하여 나라의 동량재(棟梁材) 산실이 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서울대 정문에서 바라본 관악(冠岳)의 ‘관(冠)’자에 걸맞게 해마다 수많은 관모(冠帽)를 쓴 학ㆍ석ㆍ박사들을 배출하고 있는 것을 보면 관악산의 모양은 이제 불의 모양이 아니라 갓의 모양 같기도 하다.

사실 관악의 모양이 불타는 모습인지 양반들의 갓의 모양인지 따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만 아득한 그 옛날, 충북 단양의 도담삼봉에 터했던 삼봉 정도전이 서울까지 올라가 이룬 역사가 70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참으로 무섭고도 질긴 것이 인간들이 엮어가는 역사다. 그뿐인가. 과학의 힘으로 자고 나면 천지가 개벽하는 오늘날도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보들의 선조 묘소를 대왕지지로 이장했는지의 여부가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으니 대단하지 않나. 어찌 보면 미신같은 오랜 학설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일정 부분 인정해야 함을 느끼며 그런 것들이 모이고 모여 세상을 지탱한다고 믿는다.

며칠 후면 전 국민의 머슴으로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다. 당선자는과연 새 천년 도읍지인 세종으로 집무실을 이전할까. 아니면 무학대사의 경고처럼 계속 화산 관악의 공격을 받는 청와대로 집무실을 복귀할까. 어쩌면 천공이 파면 대통령에게 점지한 용산 집무실을 사용할 지도 모른다. 아무려나 다 같은 대한민국의 땅일 것. 어디로 가든 삿되게 왕노릇만 하려하지 말고 오히려 백성 섬기기를 주인처럼 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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