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존중되어야-
사람은 누구나 존엄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죽음 또한 존엄하게 맞이할 권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품위 있는 죽음(Well-dying)’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다. 국민 절대 다수가 찬성하는 조력존엄사 제도의 입법화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국가데이터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4년 12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2030년이면 OECD 최고령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대수명은 83.7세로 세계적인 장수국가가 되었지만 건강수명은 69세에 머무르고 있다. 오래 사는 만큼 아픈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개인의 고통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의 부담이다.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국민 인식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25년 말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는 270만 명을 넘어섰고, 실제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한 사례도 40만 건에 이른다. 반면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40명으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치료 불능의 환자가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를 찾는 사례도 늘고 있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부족한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우리 사회에서 존엄사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2009년 대법원의 이른바 ‘김 할머니 사건’ 판결 이후다. 이를 계기로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임종 과정의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이 제도는 임종 단계의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존엄사의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연명의료 중단이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치료 효과가 없는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제도화되어 있다.
둘째는 조력존엄사다.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가 의사의 처방이나 안내를 받아 스스로 약물을 사용해 생을 마감하는 방식이다. 의사가 직접 약물을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와는 구별된다.
셋째는 적극적 안락사로, 의사가 환자의 요청에 따라 약물을 투여해 생을 마감하도록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도 조력존엄사 제도 도입 논의는 이어지고 있다. 2022년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되었고, 202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공론화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여론 역시 제도 도입에 우호적이다. 2025년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6%가 조력존엄사 제도에 찬성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서도 찬성 비율은 82%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계를 중심으로 일부에서는 생명의 존엄성을 이유로 제도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생명을 스스로 마감하는 행위는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쟁 속에서 제도 도입은 아직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세계의 흐름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호주, 미국 일부 주에서는 조력존엄사를 허용하고 있으며, 네덜란드와 벨기에, 캐나다 등에서는 적극적 안락사까지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과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초고령사회로 향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존엄한 죽음에 대한 제도 마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적극적 안락사까지 한 번에 논의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조력존엄사 제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은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환자와 가족에게 극심한 고통만 남길 수 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인간의 존엄과 직결된 문제다. 이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 못지않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사회가 답해야 할 때다. ‘품의 있는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보장 되어야 한다. 조력존엄사 입법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다. 정부와 국회가 더 이상 논의를 미루지 말고 결단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