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가슴 한 쪽이 비어버린 듯 공허했던 시절이 있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일수도장 찍듯 차곡차곡 마시고도 모자라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아침까지는 속된 말로 뿌리를 뽑았으니 지독한 술병이었다. 그렇게 매일 술과 씨름하며 세월을 죽이던 나는 그래서 주말 이틀을 대부분 집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술을 마시는 동안 애들과 일주일 내내 전쟁 아닌 전쟁으로 살았던 아내는 주말마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 자고 싶은 나와 나가고 싶은 아내는 주말마다 다투느라 자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면 다시 월요일이 왔고 나는 또 주야장창 술판을 벌였다.
그런데 왜 그렇게 퍼먹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수수께끼다. 젊은 혈기에 습관이 들었던 것인지, 먹으면 먹을수록 늘어나는 주량 탓인지 알 수 가 없다. 아내 말처럼 집안 내력이거나 그 나이에는 그렇게 살도록 예정된 내 운명이었던 지도 모르겠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남들처럼 같은 세상에 살지 못하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사시는 부모님 생각이 간절했던 시절이기는 하다. 그런다고 모든 사람이 나처럼 술만 마시고 산다면 세상이 온통 술 천지일 텐데 그렇지 않을 걸 보면 이유도 아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술 자체가 이유가 되어 퇴근할 때마다 누가 한잔 하자는 사람 없는지 눈치를 보며 살았는데 좋게 말하면 진한 술과의 인연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병이었다.
아내는 그런 내게 잠시 잠깐은 지극정성이었다. 적어도 그것이 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는 아침마다 꿀물도 타 주고 해장국도 끓여주곤 했다. 그러나 알코올중독 증세라는 사실을 눈치 챈 이후부터 아내는 더 이상 남편을 다소곳이 기다리지 않았다. 12시가 넘으면 베게와 이불을 거실에 던져 놓고 안방 문을 잠그고 잤다. 새벽 3시가 넘으면 아예 현관문까지 잠가 버렸다. 그러면 나는 열리지 않는 문을 향해서 이웃집에 들릴 정도로 난리를 치다 그냥 회사로 출근해 버렸고, 그런 날은 왜 문을 따주지 않았는지 따지기 위해 일찍 퇴근했다. 그러면 아내는 외박을 했다하고 나는 하지 않았다며 옥신각신 싸우다 결국 또 술을 먹었다.
극약처방이 필요했던 아내가 수를 썼던 적도 있었다. 마시지 못하는 술을 애써 안주도 없이 마시고 나의 퇴근시간에 맞추어 거실 바닥에 쓰러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걱정스럽게 엄마를 깨우던 애들을 밀쳐내고 침대로 옮기긴 했지만 술 취한 사람이 술 취한 사람을 옮기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어찌어찌 아내를 침대에 눕힌 나는 걱정은커녕 무슨 여자가 이렇게 무거운지 죄 없는 아내에게 점점 몸이 불어간다고 탓하다 또 술을 마셨다. 무슨 일이든 그렇게 건수만 생기면 술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절망한 아내가 아주 작정을 하고 대형사건을 터트렸다. 그날따라 거래하는 은행에 들렀다가 일찍 회사로 돌아왔는데 경비실에 눈에 익은 어린 애들이 놀고 있었다. 순간 어떤 안 좋은 직감이 느껴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 애들이었다.
“어? 너희들 여기 웬일이야?”
“엄마가 경비아저씨하고 놀다가 아빠하고 집에 가라 하셨어요!”
“…”
극약 처방이란 이런 것이다. 아내는 통쾌하게 집을 나가는 방법을 연구했나 보다. 애들을 회사 경비실에 반납하고 나갔는데 나는 애들 걱정보다 그날 저녁 만나기로 한 술 약속을 취소하는 일이 더 걱정이 되었다. 생각 끝에 애들을 데리고 처가에 갔지만, 그렇게 살가우셨던 장모님은 무슨 연락을 받았는지 우리 집은 딸 없다며 대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이런…. 부모님이 안 계셔 처가가 아니면 애들 부탁할 데가 없다는 걸 알면서 날더러 고생 좀 하라는 뜻인가?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지만 도저히 약이 올라 잠이 오지 않았다. 또 술을 먹고 싶었지만 보채는 애들이 틈을 주지 않았다. 급한 김에 다음날부터 연차휴가를 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몇 시에 유치원을 보내야 하는지, 학원은 어디에 있는지,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약 오른 마음은 초조함으로 변했다. 반드시 복수하리라 마음먹었지만 시간은 내편이 아니었고, 그간 늘 내가 갑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당해 보니 철저하게 을이었다.
텅 빈 거실에 앉아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였는지 하나씩 곱씹어 보았다.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만취해서 들어오시던 것을 참 싫어했던 아픔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날은 영락없이 어머니와 부부싸움을 하셨고, 다락방에서 동생들과 숨을 죽이며 ‘나는 커서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싸움이 끝나기를 기도했던 사람이다. 그런 내가 나도 모르게 학습 되어 술병을 대물림하고 있었다. 아, 집안내력이란 신체적인 유전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환경적인 경험이 중화시켜 문제를 문제로 알지 못하게 한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늦은 밤까지 고민을 하다 반성문 비슷한 글을 아주 여러 장 쓴 후 아내를 돌아오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부터였다. 일기인지 낙서인지 모르는 글들이 조금씩 써지기 시작했다. 쓰는 시간만큼 술 먹는 시간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살아온 날들을 하나씩 글로 복기하는 시간을 갖다보니 자연 술이 멀어졌고, 주량이라는 것은 선척적인 것이 아니라 먹으면 먹을수록 늘고 먹지 않으면 않을수록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거의 술을 찾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술이라는 절친과 절교한 셈이다. 대신 수필이라는 연인을 만났다. 아니 사귀는 중이라고 해야 맞다. 술만 사귈 때는 술이 최고인 줄 알았지만 수필과 사귀다 보니 참 괜찮은 지기이다. 술잔 속에 고였던 나만의 사유는 술이 깨고 나면 없어져 버렸지만 원고지에 적어 놓은 생각은 두고두고 내어볼 수 있었다. 이렇게 매력 있는 것을 나는 왜 진작 몰랐을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미 지나간 일을 돌이킬 수도 없고 후회하면 할수록 그 시간만큼 더 손해라서 다행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라도 수필이라는 인연을 만난 것이 다행이지만, 더 다행인 것은 기억하기 싫은 상처는 지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영혼을 어지럽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수치심은 마음만 다진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라 외려 가슴 속에 더 깊이 박혀 당사자가 느끼지 못할 뿐 놈은 시시로 드러낼 기회를 노린다. 그것이 그릇에 담아두었던 구정물 같은 것이라면 부어내 버리면 그만이지만, 켜켜이 쌓여 가슴에 물든 상처는 단순히 부정한다고 절대 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수필에게 고맙다. 계속해서 술에 취했으면 위장만 탁해졌을 텐데 생각에 취해 마음을 정화시켜주었으니 참말로 고맙다. 술에게도 고맙다. 내게 이런 소재를 주어 수필을 쓰게 했으니 고마운 일이다. 나의 부드러운 연인이 된 수필은 어느 결에 나를 꽉 틀어쥐고 미소 짓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