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이상하게도 출근길 내내 무언가 답답했다. 어딘지 모르게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웠고 엉덩이 부근 어딘가에 있지 말아야 할 그 무엇이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야릇한 심정으로 사무실 의자에 살짝 앉아 보았다. 평소보다 폭신폭신한 느낌도 들고, 편안하면서도 불편하기만 한 이 느낌의 정체가 도대체 무얼까? 하룻밤 사이에 엉덩이에 살이 붙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지에 껌딱지가 붙은 것도 아니고, 펑퍼짐하게 튀어나온 바지의 엉덩이 부분을 멀뚱멀뚱 바라보았지만 분명 무언가 문제가 있긴 한데 까닭을 몰라 갈수록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그런데 알았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에 들어가 바지를 내리다 말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젯밤 잠옷으로 입었던 반바지를 벗지 않고 그냥 그 위에 양복바지를 걸치고 출근한 것이다. 아직 치매가 올 나이도 아니고 성격상 덤벙대는 스타일도 아닌데 이 무슨 실수인가. 서둘러 반바지를 벗으려다 말고 문득 생각을 고쳐먹었다. 오늘 하루쯤은 뭐 그냥 이렇게 든든하고 입고 다녀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부족해도 불편한 일이고 남아도 불편한 일이긴 하지만 푸근하게 남는 일이니 견뎌보기로 했다.
아침마다 나는 이렇게 출근 전쟁을 시작한지 벌써 여러 해 째다. 사실은 오늘 아침에도 애들이 지각한다고 아우성을 치는 통에 서두르다보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 매일 큰 딸과 아들 두 녀석, 그리고 집사람을 회사까지 출근을 시켜야 하는 탓이다. 덕분에 나의 승용차는 이미 작은 출근버스다. 버스노선이 발달하지 않은 지방 소도시에 사는 죄로 다섯 식구를 실어 나르는 일이 마치 부업처럼 되어버렸다. 그렇더라도 자청한 일이니 누구한테 하소연 할 수도 없다. 다만 이렇게까지 잠옷을 입고 출근할 정도로 부대낄 일은 아닌데 누가 볼까 쑥스러울 따름이다.
문제는 애들이다. 녀석들은 거의 매일 돌아가면서 한 놈씩 늦장을 부리면서 어쩌다 한 번 내가 늦장을 부리면 거의 죄인 취급을 한다. 그러니 이렇게 허겁지겁 서두르다 겹겹이 옷을 껴입고 출근하는 일이 벌어졌다. 생각해보면 조금 괘씸한 생각도 들지만 되돌려줄 방법도 없다. 저마다 편한 걸음으로 집을 나서면 그만인 일을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감수해야만 한다.
언제부터인지 애들이 자라면서 가족 간 서로 눈인사도 나누기 어렵게 되었다. 아침에 각자 뿔뿔이 흩어지면 오후에는 서로 귀가하는 시간도 다르고, 밥 먹는 시간도 달라 좀처럼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들다. 게다가 주말에도 나는 산으로, 애들은 도서관으로 향하니 말만 가족이지 온통 행동은 따로국밥이다. 그래서 출근시간만이라도 부딪히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조금 불편부당하더라도 나로서는 이 출근전쟁을 계속해야 한다.
그런데 전쟁이란 무엇인가. 얻고자 할 때 스스로 일으키는 자기주장인데 나의 출근전쟁은 사실 얻어지는 소득도 별로 없다. 버스요금보다 자가용 유류비가 적게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이리저리 돌고 돌려면 등교 시간이 단축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혼자 주장으로 이 소득 없는 전쟁을 일으켰다. 어떤 날은 시험을 보는 날이라서 큰애가 보채고, 또 어떤 날은 숙제를 안했다고 막내가 보채는 그야말로 왁자지껄, 좌충우돌인 작은 전쟁이었지만 나로서는 꼭 필요했다. 저마다 자기주장으로 아침마다 시끄럽지만 뭐, 어떤가. 살다 보면 조금 늦어서 다행이고 돌아가서 좋은 경우도 얼마든지 많다. 네 탓 내 탓을 가려가며 원망도 하고 양보하면서 더러는 포용하는 지혜도 얻겠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어찌 직선이라야만 이득이 있다는 것인가. 이렇게 구불구불한 길에서 얻어지는 것도 꽤 있다. 부딪히면서 얻어지는 균형 또한 살펴보면 결코 가볍지만도 않다.
요즘 가을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달려오는 겨울이 밀어내서라기보다는 뒷산 굴참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 때문에 무게가 더해지는 것 같다. 떨어져 내린 도토리 위로 한 잎, 두 잎, 덮어주는 낙엽 이불들이 속내를 드러낼 때마다 울긋불긋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여름 내내 제 일을 다 한 굴참나무 잎이 흙속에 묻히지 않고 도토리 이불이 되어 바람을 막아주는 것이다. 남은 계절의 추위가 걱정스럽기 때문일 것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겨우내 씨를 말려버릴 지도 모를 청설모의 만행을 경험으로 아는 탓인지도 모른다. 한 계절이 더 지나 새 생명의 잉태가 확인되면 그때 비로소 스스로를 썩혀 거름이 될 것이다.
우주만물이 헝클어지지 않고 지탱하는 힘은 결코 직선에서만 얻어지지 않는다. 정돈되지 않은 일상에서도 반드시 균형을 찾아가는 힘이 나오기 마련인데 내 기준으로 보면 그것은 사랑이다. 그것으로 인해 작은 것은 모여 큰 것이 되고 어린 생각은 여물어 열매에 이른다. 때가 되면 떨어지는 가랑잎 한 장까지 서로 어우르며 종국에는 저렇게 커다란 울타리를 이루는 것을. 어찌 한 가족의 아침 소통에서 얻어지는 것이 없을까. 그런 의미에서 엉거주춤해 불편했던 양복바지 또한 균형을 찾기 위한 자연스러운 부작용이다. 삶이란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이루어지는 법, 그것이 반드시 남들처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스스로에게는 반드시 그만큼 결실이 안겨진다. 내일 아침에도, 그 다음날 아침에도 나의 양복바지 속에 계속해서 얄미운 반바지가 끼어들더라도 내가 미워하지 않고 견뎌야만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