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의  기세가 꺽일 줄 모르는 날씨가 계속된다. 매서운 바람소리에 잠이 달아난다. 2022년 마지막날, 12월31일이다.

새벽녘 잠을 설쳐서인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아침을 맞았다. 배꼽시계는 어김없이 꼬르륵 신호를 보낸다. 방문 밖에서 들려오는 달그락 소리가 반갑다. 푹 익은 총각김치를 넣어 팔팔 끓인 청국장찌개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낮이 되니 햇빛이 눈부시다.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길을 생각하다가 논둑길이 떠올랐다. 모자와 장갑 목도리로 몸을 감싸고 집을 나섰다. 경북 영주시 서천부터 안정면 일대를 걸어볼 심산이다. 

서천교 아래 조성된 파크 골프장에서 시작한다. 영주파크골프장은 제1, 2 파크골프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파크골프장은 영주시 기흥동 영주교 아래에 36홀,  제2파크골프장은  기흥 제1교 밑에 18홀이 조성됐다. 모두 54홀 규모다.

어르신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에 움추린 어깨가 절로 펴진다. 데구르르 딱! 공을 치는 소리에  걸음을 잠시 멈춘다. 

소백산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에 볼이 얼얼하다. 체온유지를 위해 걸음을 재촉한다. 손발이 시리기 전 움직이는게 상책이다. 그래도 파란하늘 위 태양이 있어 다행이다.  

한겨울이지만 볕을 쬐면서 걷는 사람이 많다. 서천둔치를 벗어나자 논두렁과 밭두렁 길이다. 볏짚을 돌돌말아 놓은 흰색의 커다란 물체를 보니 마시멜로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  

누렇고 메마른 길위로 푸른 냉이가 튼실하게 자란다. 고요한 겨울이지만 개울 속 오리들은 분주하다. 연신 머리를 물 속으로 들어밀고 먹잇감을 찾는다. 햇볕에 물결이 반짝인다.

걷다보니 안정면 입구까지 왔다. 면사무소와 학교를 중심으로 음식점과 주유소, 농협, 파출소, 슈퍼마켓이 밀집되어 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동네가 조용하다.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니 보리밥집이 눈에 들어온다. 주인장 혼자 운영하는 식당이다. 각자 취향에 맞는 나물로 비벼 먹는다. 시원한 된장국과 함께 하는 보리밥, 마음까지 배부르다. 

속이 든든하니 다시 걷는다. 샌드위치, 커피 맛집이라는 시골 슈퍼마켓 또한 지나칠 수 없다. 계산대 옆에는 "식빵 꼬댕이 필요 하신분 가져가세요"라고 적힌 안내문이 있다. 사장님의 알뜰함이 미소를 부른다. 

되돌아올 길은 개울 건너편으로 잡았다. 버드나무와 기괴한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알림 표지판을 보니 "선사시대 자연석으로 1783년경 우계 이씨 일족이 입향하면서부터 동신으로 모셔온 신령한 바위이다. 해마다 정월대보름날 자시(子時)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동제를 지낸다"고 적혀있다. 

선돌을 지나자, 사방을 비닐로 감싼 정자가 보인다. 어르신 한분이 커다란 양동이와 바가지를 들고 걸어 오신다. 걸음걸이로 보아 양동이가 꽤나 무게가 나가는듯 보인다.
"어르신, 같이 들어드릴까요?"
" 아냐. 괜찮아." 
 돼지뼈를 끓여 동네분들과 나눠드시기 위해 가지고 나온다고 하셨다. 

곧 마을잔치가 열릴 것이다. 누구네 집 아들은 서울가서 성공하고, 어느 댁 아주머니는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는 이야기가 귓전에 맴돈다. 이렇게 추운 겨울이면 어머니의 청국장, 아버지의 소죽 쑤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구수한 냄새가 스쳐 지나간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날, 논밭 길을 걸으며 유년을 소환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천단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