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평범한 50대 직장인이다. 지난해 12월3일 밤 10시쯤 집에 들어와 운동복을 갈아입었다. 나이 탓인지, 술 때문인지 야금야금 늘어난 뱃살이 걱정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 좋아졌어"라고 하지만 불어난 살의 에두른 표현이란 걸 잘 안다. 그래서 달밤 걷기를 결심했다. 그날도 세수하고 이닦고 모자와 장갑을 챙겨 집밖을 나가려는데 카톡음이 들린다. "형, 계엄령이 선포됐대요!""너 술 많이 했구나.오늘은 그만 자!""아니에요. 뉴스를 보세요". A씨는 20초도 버티기 힘든 플랭크 자세로 몇분 동안 뉴스를 봤다. 텔레비전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1980’이나 ‘서울의 봄’, ‘택시운전사’에 나올 법한 상황이 펼쳐졌다. 쇼파에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했다. 다음날 새벽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고, 실현될 때까지 꼬박 밤을 새웠다.
그리고 한 달 반 가량 지났다. 그동안 대통령 체포 작전이 있었고, 구금 이후에도 공수처 조사는 회피한다는 뉴스를 들어야 했다. A씨는 1월 18일 밤부터 19일 새벽까지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12.3 계엄을 보면서 상식적 판단이나 섣부른 짐작을 유보하게 됐다. 결국 계엄을 일으킨 ‘우두머리’는 19일 새벽 2시50분 구속됐다. 계엄을 선포한지 47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체포된 지 4일 만이다. 윤 대통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공모해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혐의를 받고 있다. 공수처와 검찰은 최장 20일간 윤대통령을 구속 수사해 2월초 재판에 넘길 테고, 친위 쿠데타 혐의 당사자는 탄핵 심판과 형사 재판을 동시에 받는 처지에 놓였다.
A씨는 연말, 연초까지 이어진 계엄과 탄핵 사태를 겪으며 달라졌다. 평소 대충보던 뉴스를 꼼꼼히 챙긴다. 궁금한 용어가 나오면 네이버 지식백과 사전을 찾아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정치, 정치인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정치하는 사람이 다 그렇지 뭐. 바뀐다고 달라지겠어". 하지만 이제는 "사람마다 정말 다르구나. 선거가 중요하다". 이런 확신을 갖게 됐다. 텔레비전을 보고 스마트폰을 검색하고 신문을 읽는 데도 따지는 버릇이 생겼다. 법조인, 관료, 언론인들의 말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팩트 체크하면 ‘아무말 대잔치’가 난무하니까. 계엄 사태의 끝이 어딜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하다. A씨 같은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이 기사는 충청매일신문에 실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