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걷기좋은 길은 뭐니뭐니해도 그늘, 계곡이 있는 시원한 곳이다. 6월17일, 충주호를 조망할 수 있는 '고봉'이 있다는 이야기에 맘이 끌렸다. 바람부는 산에서 호수를 바라보는 광경이 떠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날이 너무 덥다. 아니 뜨겁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난다. "가지 말까, 아니야 그래도 걸어보자". 순간 정태춘의 노래 '북한강에서'가 떠올랐다. "강물속으로 또 강물이 흐르고, 내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히며 흘러가고..."
자동차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었다. 일단 늦은 점심을 해결하자. 미리 알아둔 '평양칼국수'를 찾아갔다. 충북 충주시 동량면 대미리 맛집이다. 냉면, 열무국수 등 여름 메뉴에 살짝 끌렸지만 이열치열을 택했다. 에어컨 바람과 얼음물로 냉한 몸을 위해 따뜻한 칼국수를 주문했다.
애피타이저로 나온 보리밥에 고추장을 비벼 한숟가락 크게 떴다. 꼬들꼬들한 식감에 입안이 즐겁다. 알싸한 고추장 맛이 입맛을 돋운다. 걸쭉한 국물이 시원하다. 부드러운 면이 속을 편안하게 한다. 더위가 주는 불쾌감이 시나브로 사라졌다.
하지만 다른 복병이 나타났다. 음식점에서 목적지까지가 멀다. 같은 동량면이지만 이쪽에서 저쪽 끝이다. 충주댐을 지나서 꼬불꼬불한 도로를 지나 40여분은 더 이동했다. 충주댐 벚꽃길을 지나서 한참을 올라가야했다. 얼마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때문인지 더 멀게 느껴졌다.
충주시 동량면 지등로 2003(자연산식당)에 주차하고 임도를 따라 오른다. '고봉'은 들머리에서 400m만 오르면 충주호의 멋진 조망과 월악산ㆍ소백산을 볼 수 있는 명당이라고 들었다. 짧은 거리란 생각에 이글거리는 태양도 부담스럽지 않다. 마음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듯 가볍다.
"60명의 스태프들이 잘 차려준 밥상에 맛있게 먹기만 하면되거든요" 황정민 배우의 유명한 수상소감이다.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는 기분으로 올라간다. 산딸기를 따먹으며 고봉까지 올라가니 정말 시원한 바람에 눈이 즐겁다. 이번에는 갈림길로 내려와서 서운리~지동리 순환임도를 걷는다.
임도안내판을 보니 5.3㎞인데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기로 맘 먹었다. 시멘트 길인데 오르막의 연속이다.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배낭을 맨 등에는 줄줄 흐른다.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오르는데 "조심하세요" 큰소리가 들린다. 자전거 두대가 내리막길을 내려온다. 시원하게 달려오는 라이더의 활기가 나를 기분좋게 한다.
푸른 하늘을 올려본다.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오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게 아닌가. 오늘은 먹기 좋은 길이 어울리겠다. 점심 칼국수, 산딸기, 거기에 오디까지! 팔을 길게 뻗어 오디를 따려는 찰나 '허허' 헛웃음과 함께 눈뜬 장님이 됐다. 오디가 아니었다.
그 열매를 자세히 보니 오디와 확연히 다르다. 솔방울처럼 딱딱하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생각,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마음을 탓했다. 늦은 오후, 태양은 강렬해지고 지표면에 반사된 열기는 더 뜨겁다.
땀을 식힐 자리를 찾았다. 작지만 평평한 바위가 있다. 시원한 그늘의 바위가 마치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님 작은비석 같다. 잠시 서서 물 한모금 마신다. 앞을 보니 석벽이다. 마애불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매끈하다.
이제 들머리로 되돌아온다. 스마트폰을 보니 8천걸음 가량 걸었다. 지금가면 저녁 모임 시간에 딱 맞겠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디 모양 나무 열매가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눈에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고, 내가 믿는게 꼭 사실이 아닐거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관련기사
- [걷기좋은 길87]죽계구곡길
- [걷기좋은 길86]어라연 산소길
- 단양 잔도, 6월 호수길 여행지 등극
- 충북 단양군, 주민 건강 챙긴다
- [걷기좋은길 85]돗밤실 둘레길
- [걷기좋은길 84]구담봉과 옥순봉
- [걷기좋은길 83]제천 가은산길
- [걷기좋은 길82]상천 녹색마을길
- [걷기좋은 길81]제천 피재와 용두산 임도
- [걷기좋은 길80]월정사 전나무 숲길과 선재길
- [걷기좋은 길89]문경 선유구곡길
- [걷기좋은 길90]응봉산 연하계곡
- [걷기좋은 길91]괴산 사랑산
- [걷기좋은 길92]덕동생태숲길
- [걷기좋은 길93]소수서원 둘레길
- [걷기좋은 길94]운곡 솔바람숲길
- [걷기 좋은 길95]배부른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