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자연스럽게 책 읽기가 생활이 되었다.
결혼한 뒤에도 독서는 여전히 내 삶의 일부였다.
작은 농촌 지역에 살다 보니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수 있을 만큼 서로를 잘 아는 곳이다.
그런 탓에 책을 즐겨 읽는다는 것도 이미 알려져 있었고, 내가 30대에 문인협회 회원으로 가입해 글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특정 단체에 소속돼 글을 쓴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번번이 사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글을 썼더라면 책 몇 권쯤 낸 기성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달콤한 생각을 잠시 해본다.
종심(從心)을 넘긴 나이에 제천단양뉴스에 나의 평범한 일상을 글로 쓰기 시작한 뒤에 문인협회 지부장님은 몇 차례 회원으로 활동해 보라 권유하셨다.
그러나 어디에 소속돼 글을 쓰는 일은 제천단양뉴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역시 정중히 사양했다.
요즘 들어 자주 드는 생각이 있다. 글이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
글을 쓰는 시간이야말로 나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지부장님께서 제천단양뉴스에 실린 내 글 몇 편을 발췌해 12월 발간 예정인 「단양 문학」에 실었으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물어오셨다.
회원으로 활동하면 좋겠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이 나이에 새로운 인연을 만나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그러자 명예회원으로 있으면서 글만 쓰면 어떻겠느냐고 하신다.
내가 괜히 튕기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엔가 소속돼 글을 쓴다는 것이 여전히 부담스러웠다.
내 글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나의 일상을 기꺼이 실어주며 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 제천단양뉴스에만 일편단심(一片丹心) 애정을 쏟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삶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하고 행복했으니 말이다.
제천단양뉴스에서는 「단양 문학」에 글을 싣는 것은 알아서 결정하라고 했다.
2026년을 이틀 앞두고 한국문인협회 단양군지부는 「단양 문학」 창간 37호 발간 기념식을 한다며 남편과 함께 참석하라는 초대장이 왔다.
치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예술인다운 복장의 작가들이 많이도 모였다.
그중에서도 6·25전쟁 당시 간호장교로 참전해 전장을 누비셨다는, 올해 아흔다섯의 이종선 할머니를 이 자리에서 뵙게 된 것은 큰 영광이었다.
또 한때 제천단양뉴스 필진으로 활동하셨던 오태동 회장님이 베레모를 쓰고 앉아 계신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에 몇 번이나 나를 알아보시길 바라며 바라봤지만, 화장 덕분에 ‘할매’가 아닌 ‘아줌마’로 변신한 모습이 낯설었는지 알아보지 못하셨다.
결국 내가 먼저 다가가 아는 척을 했다. 안면이 있다는 건 이렇게 사람을 단번에 친근하게 만든다.
식순에 따라 간단히 출간 기념식을 마친 뒤 회식 자리로 이동했지만, 남편과 함께할 자리는 아닌 듯해 살짝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잠시 후 지부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이번 일에 참 많은 정성을 쏟아주신 게 느껴졌다.
며칠 뒤 직접 찾아오시겠다는 말씀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번 「단양 문학」에 내 글 ‘나의 보물 1호’ 외 다섯 편이 실렸다.
실린 글을 다시 읽으며, 글쓰기는 늘 혼자만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한 편의 글이 누군가의 손을 거쳐 책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이 더해지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단양문학에 실린 작가들의 내공 깊은 작품들을 읽다 보니, 내 멋대로 써 내려간 나의 일상이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기쁨보다는 죄송함과 고마움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내 글이 활자가 되어 책에 실린 것이 싫지는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기쁘고 뿌듯했다.
